1930년 일본인 요코야마[橫山將三郎]가 조사한 바 있다. 동남-북서방향으로 길게 뻗은 높이 100m 내외의 야산 봉우리 중 동남쪽의 터를 B·A·C·D지점으로 나누어 조사하였다.
A지점이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이 곳은 화강암의 바위산으로서 표면은 풍화된 석비례층이며, 나무가 거의 없어 유적의 유물이 흘러내려 산포지로 변하였다.
A지점은 4곳의 산포지 중 가장 상태가 양호해 표토가 30㎝쯤 쌓여 불탄 흙과 반달돌칼[半月形石刀]·홈자귀[有溝石斧]·토기 3개체분 등이 발견되었다. 유적의 성격은 알 수 없으나 불탄 흙으로 보아 집자리였던 듯하다.
A∼D지점에서 수집한 유물은 모두 비슷한 것들이다. 쇠뿔모양[牛角形]의 손잡이가 달려 있는 단지, 덧띠토기[粘土帶土器], 심발형토기(深鉢形土器), 굽다리접시[高杯], 구멍무늬토기[孔列土器], 조합식쇠뿔손잡이[牛角形把手], 겹아가리토기[二重口緣土器] 등이 나왔다.
바닥은 모두 납작바닥이며 올림바닥도 있다. 바탕흙에 모래가 많고 표면을 간 것도 있으나 붉은 칠을 한 토기는 보이지 않는다. 작은 토기는 손으로 빚었으나 큰 토기는 점토띠를 감아 올려 만들었다.
그 밖에 통(筒)모양의 흙추와 돌망치[敲石] 2점, 단면이 편육각형(扁六角形)인 무경만입촉(無莖彎入鏃) 4점, 점판암제의 반달돌칼 4점, 홈자귀 3점, 돌도끼 2점, 돌솥 1점, 숫돌[砥石] 1점 등의 석기들이 나왔다. 유물의 대부분은 A지점에서 출토되었다.
서울 응봉동유적은 한강변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 후기를 중심으로 하는 민무늬토기 유적이다. 요코야마가 수집했던 서울 근교의 민무늬토기유적 중 하나이며, 요코야마 자료의 여러 유물들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