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와 출신지 및 그 아버지의 성명 등에 관해서는 기록이 누락되어 알 수가 없다.
태조 후비 가운데 관계기록이 전무한 경우는 이 비가 유일하다. 이처럼 기록이 인멸된 이유는 고려 왕실에서 차지하는 후비의 위치가 높지 못 하였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태조는 고려를 세운 뒤 호족세력을 통합하는 방법의 하나로 혼인정책을 추진하였는데, 그 대상은 즉위를 도와 준 무장세력, 학문적 능력을 가진 문사층, 귀부해 온 지방호족 및 신라왕족과 같은 광범한 세력이었다.
서전원부인의 위치로 보아 신라왕족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기 때문에, 이를 제외한 나머지 중 한 가지 방법으로 태조를 도왔을 것이며, 이러한 도움에 대한 보답으로 태조는 서전원부인을 후비로 맞아들였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