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침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첨지중추원사, 전의소감, 전라도처치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성묵(聖默)
구계(龜溪)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달성(達城)
주요 관직
첨지중추원사|전의소감|전라도처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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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첨지중추원사, 전의소감, 전라도처치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성묵(聖默), 호는 구계(龜溪). 아버지는 정당문학(政堂文學) 서균형(徐均衡)이며, 어머니는 승동정(承同正) 이영유(李永儒)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정몽주(鄭夢周)를 따라 학문을 배웠고, 고려 말 조선 초의 변혁기에 향리에서 은거하여 학문연구에 노력하였다.

세종대에 서씨 일문(徐氏一門)의 근거지였던 달성을 경상도의 요새로 삼고 성을 쌓기 위해 서침의 땅과 바꾸게 하자 이에 협조하여 포상을 받게 되었는데, 서침은 포상 대신에 환자[還上]의 모곡(耗穀: 세곡을 되돌려 받을 때 운반이나 동물의 해로 손실되는 양을 추가한 양)을 감하여줄 것을 건의하여 허락받았다.

이로 인하여 인근주민의 추앙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국가로부터 남산의 옛 역(驛)터와 연신지(蓮信池)와 신지(新池) 등이 하사되었고, 관료로 탁용되게 되었다. 1433년(세종 15) 첨지중추원사가 되었고, 전의소감(典醫少監)을 거쳐, 다음 해에 전라도처치사가 되었다. 대구의 구암서원(龜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세종실록(世宗實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국조방목(國朝榜目)』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대구읍지(大丘邑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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