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농집 ()

석농집
석농집
유교
문헌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오진영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50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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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오진영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50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이 문집은 1950년에 편집·간행되었다.

서지적 사항

36권 14책. 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15에 서(書) 1,013편, 권16∼19에 잡저 115편, 권20∼22에 서(序) 88편, 기(記) 95편, 권23에 발(跋) 35편, 명(銘) 14편, 찬(贊) 1편, 자사(字辭) 6편, 혼서(昏書) 6편, 고축(告祝) 13편, 제문 24편, 상량문 1편, 권24∼28에 신도비명 2편, 비문 15편, 묘갈명 162편, 묘지명 20편, 권29에 묘표 43편, 권30·31에 행장 42편, 전(傳) 15편, 권32에 시 367수, 별집 권1∼4에 연보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서(書)는 방대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고, 대상도 스승인 전우를 비롯하여 친구·동문(同門) 등 상당히 광범위하다. 전우에게 보낸 서찰은 61편으로 성리학에 관해 논변한 것이 많다. 대체로 사설(師說)을 따라 이기일체관적(理氣一體觀的) 입장에서 이이(李珥)의 설을 적극 지지하고 영남학파의 주리설(主理說)을 맹렬히 비판하고 있다.

또한, 당시의 신학(新學)과 양치차오(梁啓超)의 교리설(敎理說) 등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가하였다. 이 밖에 친일 매국하는 일당들과 외세를 배격하고 유교적 가치관에 입각한 참다운 도덕 정치 실현을 주장하며 스승 전우에게 현실 참여를 촉구하기도 하였다. 권순명(權純命)·민병승(閔丙承)·유영선(柳永善)·남진영(南軫永) 등과도 각각 수십 회에 걸쳐 성리학·역사·시사(時事) 등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잡저에는 성리학에 관한 논문을 비롯하여 의리·도덕 및 시사적인 문제를 다룬 글이 많다. 「포고천하문(布告天下文)」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친일 매국노들을 비판하고 민족자존의 대의를 밝힌 내용이다. 「파리대회공함(巴里大會公函)」은 1919년 파리 평화 회의에 보내기 위해 작성한 것으로 일본의 만행을 폭로하고 우리나라의 독립을 호소하는 내용이다. 그밖에 이이의 담일청허(湛一淸虛)·이통기국(理通氣局) 등 성리학에 관해 논변한 것이 있다.

연보의 말미에 있는 「계갑록(癸甲錄)」은 스승 전우의 문집 간행을 둘러싼 논쟁 사건의 전말을 소개한 글이다. 또 연보에는 단종의 손위(遜位: 임금의 자리를 사양함) 당시 비화를 소개한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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