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희(金昌熙: 1844~1890)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수경(壽敬), 호는 석릉(石菱) · 둔재(鈍齋)이다. 사헌부대사헌, 홍문관제학, 예문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12권 3책의 활자본으로, 별도의 서발문은 없으며, 맨 처음에 총목이 있고 권별로 목록이 있다. 책의 말미에 있는 간기를 통해 1898년(고종 35)에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대학교 도서관,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이화여자대학교 등에 소장되어 있다.
김창희의 아들 김교헌(金敎獻)이 1898년(고종 35)에 저자가 생전에 정리한 고본(稿本)과 별저(別著)들을 바탕으로 활자로 간행하였다. 고본은 완질로 혹인 낙질로 전해지는데, 『석문만고(石門漫稿)』, 『석릉만고(石菱漫稿)』, 『석릉문고(石菱文藁)』, 『구작초존(舊作鈔存)』, 『담설(譚屑)』, 『회흔영(會欣穎)』 등이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석릉집(石菱集)』에 수록된 『담설』, 『월성가사(月城家史)』, 『회흔영』은 각각 1883년, 1884년, 1888년에 별저로 인행되기도 하였다.
권1에는 소(疏) 8편, 서(書) 4편, 설(說) 1편이 실려 있다. 편지글 가운데 「답우인론문서(答友人論文書)」는 김창희의 문장관이 구체적으로 제시된 글이다. 권2에는 서(序) 7편, 기(記) 1편이 실려 있다. 서문 가운데 「사품집선서(四品集選序)」는 당송 이래 대표적인 문장가의 글을 가려 뽑은 『사품집선(四品集選)』의 서문이고, 「전필록서(傳筆錄序)」는 당송 이후의 문장가들의 글 가운데 문장을 논한 글들을 뽑아 놓은 『전필록(傳筆錄)』의 서문이며, 「월성가사서(月城家史序)」는 선대의 유사를 모아 놓은 『월성가사(月城家史)』의 서문이다.
권3에는 제발(題跋) 12편이 실려 있다. 「서팔대가문초후(書八大家文鈔後)」는 모곤(茅坤)의 『당송팔대가문초(唐宋八家文鈔)』를 읽고 팔가의 특징과 고문 학습 방법을 논한 글이다. 권4에는 가장(家狀) 1편, 잡저 7편이 실려 있다. 가장은 김창희의 부친 김정집(金鼎集)의 행장이다. 잡저 가운데 「기몽(記夢)」은 여름에 나비가 되어 산수를 유람하는 꿈을 꾸고 깨어나서 그 소회를 적은 글이고, 「계원퇴사자전(溪園退士自傳)」은 『회흔영』 출간에 즈음하여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기 위해 지은 자전(自傳)이다.
권5·6은 『회흔영』 상하편이다. 당송 이래 문장가들의 글에 대해 비평한 것이다. 권7·8은 『육팔보(六八補)』 상하편이다. 김창희는 임오군란 이후 우리나라에 주둔한 청나라 군대의 영접관으로 뽑혀 오장경(吳長慶) 막하의 문인들과 교유하면서 그중 장건(張謇)과 이연호(李延祜)에게 당시 조선이 처한 난국을 타개할 방안에 대해서 자문을 구하였는데, 이에 장건과 이연호가 제시한 방안에 대한 논평과 대안을 담은 것이다.
권9·10은 『담설(譚屑)』 상하편이다. 자신의 단편적인 생각을 특별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짤막하게 기록해 놓은 필기로, 수신‧문학‧정사 등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다. 권11·12는 선조들의 행적을 정리하여 엮은 『월성가사』 상하편이다. 부록에는 감창희의 아들 김교헌이 지은 사략(事略)과 사제문(賜祭文)이 실려 있다.
『석릉집』은 조선 후기에 활동한 김창희의 시문집으로, 그의 학문 및 문학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김창희는 고문 작법과 산문 비평에 특히 조예가 깊었던 인물이다. 당송부터 명청에 이르기까지 27명의 고문 작가들의 저작에 대한 비평과 자신의 고문에 대한 관점을 피력한 것이 『회흔영』이고, 중국 역대 문장가들의 문장을 품계를 나누어 수록한 것이 『사품집선』이다. 이러한 저작들을 통해 고문 작가와 비평가로서의 면모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이와 관련한 글들이 권2의 「사품집선서」‧「전필록서」, 권3의 「서팔대가문초후」, 권5‧6의 『회흔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