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직(李定稷: 18411910)은 개항기와 대한제국 시기에 활동했던 유학자이다. 전통적인 도학의 바탕 위에서 새로운 시대의 학문을 조화시키려는 학풍을 보였다. 또한 문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서예가, 화가로서 다방면에 걸친 업적을 남겼으며, 어문학 · 경학 · 술학 · 예학 · 산학에 모두 뛰어나 통유(通儒)라 불릴 정도였다. 이러한 업적으로 인해 ‘근세 호남3걸’이라 불리기도 했다. 저자의 제자인 송기면(宋基冕: 18821956)과 손자인 이유면(李愈勉)이 편집과 간행에 참여하였다.
통용되는 『석정집(石亭集)』은 일반적으로 7권 3책의 연활자본을 가리킨다. 이와 별도로 연활자본을 간행하기에 앞서 존재했던 미정고본 몇 종이 필사본으로 전한다. 『연석산방미정고(燕石山房未定藁)』[20책]가 후손가에 소장되어 있고, 『연석산방문고소품(燕石山房文藁小品)』[1책]이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연석산방별집미정고(燕石山房別集未定藁)』[영본 1책]가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저자 이정직의 중년까지의 저술은 1894년 일어난 동학운동 때 전주(全州) 거처가 전소되면서 함께 소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전하는 저술은 그 이후로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작성된 것이다. 이때의 저술을 만년에 『연석산방미정고』로 정리하였다. 편집을 주관한 제자 송기면이 이 가운데 시문 성격의 글을 가려 뽑아 연활자로 간행한 것이 현재 통용되는 간본 『석정집』이다. 미정고 가운데 간본으로 정리되어 수록된 시문은 절반 정도이다.
체제가 정리되어 있는 연활자본을 기준으로 구성과 내용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권1에는 부(賦) 1편, 시 100수가 실려 있다. 권2에는 시 64수, 권3에는 시 120수가 실려 있다. 그는 여러 편의 시론을 통해 법고(法古)를 중심으로 하는 평담(平淡)한 시 창작을 중시하였는데, 실제 작품에서도 이러한 면모가 잘 드러난다.
이후로는 산문이 수록되어 있다. 권4에는 서(書) 7편, 서(序) 8편, 기(記) 13편, 발(跋) 1편, 명(銘) 2편, 잠(箴) 1편, 제문(祭文) 1편이 실려 있다. 서문 가운데 「소여록서(燒餘錄序)」는 자신의 문집에 붙인 서문으로, 문집 전체의 서문 성격을 갖는다. 기문은 대부분 주변 인물의 거소에 붙여준 것들이다.
권5에는 논(論) 27편이 실려 있다. 「논왕양명(論王陽明)」은 양명학의 학설을 조목으로 나누어 낱낱이 변론한 논설이다. 그밖에 범증(范增), 노중련(魯仲連), 오자서(伍子胥) 등 역사 인물들에 대한 논평이 다수 실려 있다. 권6에는 설(說) 33편이 실려 있다. 태극(太極), 이기(理氣), 체용(體用), 이일분수(理一分殊) 등 도학의 이치에 관한 논설이 다수이다. 권7에는 잡저(雜著) 24편과 함께 부록으로 행장 · 전(傳) · 묘갈명 등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