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성육남(成六男). 광주(光州) 출신. 해금산조의 명인인 지영희(池映熙)의 부인이다.
1935년 조명수(曺明洙)에게 가야금풍류와 판소리를 배웠고, 1936년 안기옥(安基玉)에게 가야금산조를 배웠다. 1938년에는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硏究會)에 입회하여 연주활동을 하였으며, 1949년에는 여성국극동지사(女性國劇同志社)에 입회하여 창극에 종사하였다.
1960년부터 국악예술학교(國樂藝術學校) 교사로 오랫동안 봉직하였고, 1966년에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에 입단하여 제1악장으로 있었다. 1968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가야금산조 및 병창의 기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으나 1975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기예능보유자에서 해제되었다.
그는 안기옥가야금산조와 박상근(朴相根)가야금산조를 토대로 새로 ‘성금연류가야금산조’를 만들어 많은 제자들에게 가르쳤는데, 이 산조는 명쾌하고 감칠맛있는 특성 때문에 1960년대와 1970년대초에 가장 많이 연주되었던 가야금산조 중의 하나였다.
그는 작곡에도 재질이 있어 「추상(追想)」 · 「새가락별곡」 등 여러 가야금독주곡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문하에서 지성자(池成子) · 지미자(池未子) · 이재숙(李在淑) · 황병주(黃炳周) 등 수많은 가야금산조의 명인이 배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