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광복 후 서울 근교의 유랑 나환자들에 대한 구호 및 의료사업의 필요성을 느낀 메리놀외방전교회 소속의 캐롤(Carroll,G.) 주교가 1950년 6월부천군 오류동에 성라자로원을 개원하였으나 6·25전쟁의 발발로 그 활동이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나 전쟁으로 약 8,000명에 달하던 나환자들이 수용소에서 풀려나 극도의 빈곤과 질병에 버려지자, 캐롤 주교는 1951년 시흥에 20만 평의 대지를 구입한 뒤 성라자로원을 다시 개원하였다. 그러자 서울교구에서는 이경재 신부를 구라사업(救癩事業) 전임자로 임명하여 성라자로원의 초대 원장으로 부임시켰다.
당시까지 천주교에서는 개별 성당 차원에서 나환자들에 대한 구호사업을 펴고 있다가 이를 계기로 구라사업을 공동으로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고, 그 결과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약 20여 개의 진료소가 개원되고, 이동 진료반을 편성하여 순회 진료를 실시하였다.
더구나 1953년 중국 본토에서 오랫동안 구라사업에 종사하던 메리놀외방전교회 소속의 스위니(Sweeny) 신부의 한국진출로 구라사업은 단연 활기를 띠게 되었다. 1988년 10월 당시 전국 98개 나환자정착촌 중 50여개 소가 천주교와 관련을 맺고 있으며 이 가운데 25개소는 천주교회가 직접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고 그 가운데에서 가장 대표적인 정착촌이 성라자로마을이다.
성라자로마을 역시 개원 초기에는 주로 이동진료를 실시했으나 1962년부터 정착촌을 마련하고 나환자들을 이곳에 거주하게 하였다. 성라자로마을은 1967년 수원교구가 서울교구에서 분리됨으로써 수원교구 소속으로 이관되었다. 1975년 성당을 건립하였고, 1981년에는 설립 30주년을 맞이하여 피정(避靜)의 집을 개설하였다. 현재 성라자로마을에는 나환자 정착촌을 비롯하여 12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병동·진료소·교육관 등 부대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며, 1971년부터 『마을회보』를 발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