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한국인 최초의 주교이자 교구장.
가계 및 인적사항
주요 활동
일제의 압박으로 일본 가톨릭교회의 서양인 교구장들이 모두 사임하고 일본인 성직자들이 교구장에 임명되자, 서울대목구장 주교 라리보(Larribeau, 元亨根)는 1941년 말, 비밀리에 교황청에 자신의 사임을 청하고 후임자로 노기남을 추천하였다. 1942년 1월, 노기남은 서울대목구장 서리에 임명되었고, 아울러 서양인 선교사들이 추방 혹은 감금되어 사목자에 공백이 생긴 평양대목구와 춘천지목구의 관리 책임도 부여받았다. 노기남은 1942년 11월에 서울대목구장에 임명되었고, 12월에 주교 서품식이 거행되었다. 또한 교황청에 평양대목구장 임명을 요청하여 1943년 2월에 홍용호(洪龍鎬)가 평양대목구장 서리에 임명되었다. 해방 직후, 노기남은 고유서(告諭書)를 발표하여 성직자와 신자들에게 정당한 정부가 수립될 수 있도록 기도할 것을 권고하였다. 1945년 9월에는 미군정(美軍政) 하지(Hodge) 중장의 정치 고문인 나이스터(Nister) 준장의 부탁으로 군정 측과 협력할 한국인 지도자 60명을 추천하였다. 11월에는 이승만(李承晩)과 만났고, 12월에는 명동성당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요 인사의 귀국 환영 미사를 시행하였다. 1948년 5·10 총선거 이후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축하하는 미사와 남북통일 기원 미사를 집전하며 신생 국가 건설을 지원하였다. 해방 직후 춘천지목구장 서리직을 사임하여 골롬반외방선교회 선교사인 퀸란(Quinlan, 具仁蘭)에게 인계하였다. 파리외방전교회를 위해 서울대목구의 분할을 계획하였고, 그 결과 1948년 5월, 충청남도에 대전지목구가 설정되었다. 1949년 4월에 설립된 한국천주교중앙위원회(韓國天主敎中央委員會, 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회장, 8월에 조직된 대한천주교총연맹(大韓天主敎總聯盟) 총재로 추대되는 등 교회 협의체의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1950년 6월, 교황청 방문을 위해 유럽에 있던 중에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각국에 한국에 대한 원조를 호소하였고, 귀국 후에는 부산의 피난 교회를 돌보는 데 노력하였다. 1950년 11월에는 유엔군과 함께 평양을 방문하여 미사를 집전하였다. 1954년 12월부터 2개월 동안 미국의 각 지역 교회를 순방하며 원조에 대한 감사와 함께 향후 지속적인 원조를 요청하였다.
1950년대 중반, 천주교회가 『경향신문(京鄕新聞)』을 통해 이승만 정권의 정치적 독재와 사회의 부정부패를 비판하자, 이승만 정권은 교황청에 정치 관여를 이유로 노기남의 경질을 요구하였다. 1960년 4·19혁명 당시에는 학생운동을 하다가 희생된 대학생 노두희의 장례 미사를 집전하는 등 4·19혁명을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다.
1958년 6월에는 청주대목구, 1961년 6월에는 인천대목구를 설정하여 메리놀외방전교회에게 위임하였다. 1962년 3월 한국 교회의 교계 제도(敎階制度) 설정으로 대목구(代牧區)에서 정식 교구로 승격됨에 따라 서울대교구장이 되고 대주교로 승품되었다. 1963년 10월에는 수원교구를 서울대교구에서 분리 · 설정하였다.
1962년부터 1965년까지 총 4회에 걸쳐 로마에서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한국 주교단과 함께 참석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타(他) 종교와의 교류에 나서 1966년 12월에 한국종교인협회 초대 회장에 선출되었다.
1967년 3월 27일, 한국 교회의 장래를 젊은 후진에게 맡긴다는 생각에서 서울대교구장직에서 사임하였다. 모든 공직을 떠난 후 경기도 안양의 성 라자로 마을 요양원에 거주하면서 한센인들과 생활하였다. 1984년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 미사와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식(諡聖式)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명동성당에서 만났다. 시성식이 끝난 후인 1984년 6월 25일에 사망하여 경기도 용인의 가톨릭 묘지에 안장되었다.
학문과 저술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단행본
- 『한국가톨릭대사전』 2 (한국교회사연구소, 1996)
- 『노기남(화보집)』 (한국교회사연구소, 2003)
- 『서울대교구사』 (한국교회사연구소, 2011)
- 『한국천주교회사』 5 (한국교회사연구소, 2014)
논문
- 김수자, 「해방 이후 노기남 주교와 반공주의」 (『교회사연구』 35, 한국교회사연구소, 2010)
- 박태균, 「한국 현대사 속의 노기남 대주교」 (『교회사연구』 35, 한국교회사연구소, 2010)
- 양인성, 「노기남 신부의 경성대목구장 착좌에 대한 연구」 (『교회사연구』 35, 한국교회사연구소, 2010)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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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신품 성사의 둘째 단계 품. 부제품이 일정한 과정을 마치면 소속 교구의 주교좌 대성당에서 신품 성사를 통하여 받는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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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본당에 딸리어 주임 신부를 도와주는 신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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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교구를 사목하는 책임을 맡은 사제. 보통 교구장이 주교가 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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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조직에서 결원이 생겼을 때, 그 직무를 대리함. 또는 그런 사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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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천주교나 성공회에서, 신도를 통솔ㆍ지도하여 구원의 길로 이끄는 역할을 하는 사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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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사제를 주교로 올려서 서품하는 의식. 보통 사도의 축일에 행하여 주교가 사도의 후계자임을 나타낸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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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전례(典禮)를 다잡아 집행하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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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하던 일이나 물품을 넘겨주거나 넘겨받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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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윗사람으로 떠받들어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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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국제 연합 회원국들의 군 병력으로 편성한 군대. 안전 보장 이사회의 요구에 따라 국가 간의 침략을 방지하고 진압할 목적으로 조직했다. 1950년 6ㆍ25 전쟁 때 처음으로 출병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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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물어 어떤 직위에 있는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바꿈.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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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학생들이 교내 문제나 정치, 사회 문제 따위에 관하여 일으키는 활동이나 투쟁.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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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3
: 죽은 사람을 위하여 드리는 미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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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4
: 교회 성직의 계급 제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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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5
: 정식 교구가 아닌, 교황청이 포교지에서 직접 관할하는 교구. 우리나라는 1831년에 베이징 교구로부터 독립하여 조선 교구를 설치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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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6
: 대교구를 주관하는 직위. 또는 그 직위에 있는 사람. 자기 관할 아래 있는 주교에 대한 교회 통치권과 주교권을 행사하는 수도(首都) 대주교와, 교황청에 근무하거나 바티칸 외교를 맡는 명의(名義) 대주교가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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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7
: 바티칸에서 두 차례에 걸쳐 열린 가톨릭교회의 공의회. 1869년의 제일 차 공의회는 교황의 무오류설(無誤謬說)과 수위권(首位權)을 확립하였으며, 제이 차 공의회는 교회의 통합, 교회의 현대화 따위를 토의ㆍ결정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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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8
: ‘나환자’를 달리 이르는 말. 나병균을 발견한 한센의 이름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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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9
: 성인품(聖人品)에 오를 때에 드리는 예식.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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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0
: 1802년에 나폴레옹이 제정한 프랑스 최고 훈장. 루이 십사세가 만든
생루이 훈장을 수정하여 만든 것이다. 지금도 프랑스에서 국가적인 공적이 있는 인물에게 대통령이 직접 수여하고 있다. 우리말샘 -
주21
: 문화 예술 발전에 공을 세워 국민 문화 향상과 나라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주는 훈장. 금관, 은관, 보관, 옥관, 화관의 다섯 등급이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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