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약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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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사건
1904년에 주조선 프랑스 공사 플랑시(Collin dePlancy)와 외부대신 이하영(李夏榮) 사이에 체결된 조약.
이칭
이칭
교민범법단속조례(敎民犯法團束條例)
목차
정의
1904년에 주조선 프랑스 공사 플랑시(Collin dePlancy)와 외부대신 이하영(李夏榮) 사이에 체결된 조약.
내용

한불수호조약 이후 선교사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선교활동을 하고 그 결과 교인수가 늘어나자, 자연히 선교사와 지방관료 및 교인과 일반인 사이에 분쟁이 야기되어 한불 양국 간의 외교문제로까지 확대되는 이른바 교안(敎案)이 자주 일어났다.

이를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하여 1889년에 교민약조(敎民約條)를, 1901년에 교민화의약정(敎民和議約定)을 체결한 데 이어, 1904년 6월 9일자로 다시 선교약조를 체결하였다.

현재 약조서(約條書)의 원문은 전해지지 않고, 다만 그해 6월 6일자 『제국신문(帝國新聞)』에 8개 조목의 내용만이 보도되어 있을 뿐이다. 그 내용은 “프랑스선교사들은 한국인을 강제로 입교시킬 수 없으며, 프랑스선교사들은 국내서 토지를 매입하고 가옥을 건축할 수 있다. 선교사들이 국내를 여행할 때에는 호조(護照)를 지녀야 하며, 교인과 민간인과의 소송은 한국관리가 이를 관장하여 공정한 판결을 내린다. 교인이 범법행위를 하고 프랑스선교사의 거주지에 숨어 있을 때에는 한국관리가 거기에 들어가 체포할 수 있으며, 프랑스선교사는 직접 소송에 간여할 수 없고, 이의가 있으면 프랑스공사에게 보고하여 공사와 외부 사이에서 해결하도록 한다.”는 등이 주요골자이다.

이 약조로 선교의 자유가 완전히 허용되고, 선교사들은 어느 곳이나 돌아다니며 성당을 건립할 수 있게 되어, 천주교 교세는 급격히 신장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참고문헌

『한국천주교회사』(유홍렬 가톨릭출판사, 1981)
『제국신문(帝國新聞)』(광무 8.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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