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891년, 대구 지역에서 선교하던 프랑스 선교사 로베르(Robert, 金保祿)가 경상감사(慶尙監司)에게 추방 당한 사건.
배경
경과 및 결과
로베르의 활동은 곧 대구 주민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가 경상도 지역에 사목 방문하기 위해 사제관을 떠난 사이, 1890년 12월에 김영옥(金永玉), 윤남출(尹南出) 등 대구 주민들이 로베르의 사제관에 침입하여 하인을 구타하였다. 1891년 2월에는 김돌몽(金乭蒙), 신금준(申今俊), 강봉술(姜奉術) 등이 사목 방문에서 돌아온 로베르를 찾아가 위협하고 사제관 주위의 신자들을 모욕했다.
이렇게 되자, 로베르는 1891년 2월에 전교회장(傳敎會長) 겸 통역인 김문일과 2명의 마부를 대동하고 대구 판관(判官)을 찾아갔지만, 판관은 병을 칭하여 만나주지 않았다. 로베르는 감영(監營)으로 가서 감사와의 면담을 청하였지만, 감사는 통역만 만났다. 감사는 로베르 일행이 천주교인이라는 이유로 성 밖으로 쫓아낼 것을 지시했다. 아전들이 김문일과 마부들을 구타했고 주민들이 신부를 위협하였다. 로베르의 요구에 따라 감사는 2명의 군졸에게 로베르 일행을 호송하도록 했지만, 그 군졸들도 통역과 마부를 구타했다.
로베르는 3월 5일 조선대목구장 주교 뮈텔(Mutel, 閔德孝)에게 서한을 작성하여 사건을 보고하였고, 3월 7일에 서울에 도착하여 뮈텔을 직접 만났다. 3월 8일에 뮈텔은 프랑스 공사 콜랭 드 플랑시(Collin de Plancy, 葛林德)에게 사건 관련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3월 9일 플랑시는 프랑스 외무부에 전보로 보고하면서 군함 1척의 파견도 요청하였다. 플랑시가 프랑스 정부에 신속한 대처를 요청한 이유는 사건 당사자가 고위 관리인 감사였고, 그 감사가 외척 가문인 민씨(閔氏) 척족(戚族)이었기 때문이다. 경상 감사 민정식(閔正植)은 민비(閔妃)의 총애를 받는 인물이었다.
3월 13일 플랑시는 외아문(外衙門) 독판(督辦) 민종묵(閔種黙)에게 6가지 조항을 제시했다. 그 내용은 첫째, 해당 감사를 징계(감봉)하고 조보(朝報)에 게재할 것, 둘째, 이 사건을 다른 지방의 감사들에게 알리고 향후 조불조약을 지키도록 명령하는 회람장을 돌릴 것, 셋째, 감사 민정식이 유감을 표명하는 서신을 플랑시에게 보낼 것, 넷째, 이 사건에 연루된 병정 · 교졸 · 주민들을 수감하여 조사한 후 과실의 경중에 따라 처벌할 것, 다섯째, 로베르를 다시 경상도로 호위해서 데려갈 것, 여섯째, 로베르에게 사건으로 인한 분실물에 대해 배상할 것 등이었다. 그런데 정부 관리들이 플랑시의 요구 조건 중에서 2~6항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1항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임에 따라 협상은 난관에 봉착하였다.
3월 21일에 프랑스 군함 아스픽(Aspic) 호가 제물포에 입항하자, 민종묵은 뮈텔을 방문하여 사건의 중재를 요청하였다. 뮈텔은 플랑시에게 3월 23일 자 서한을 보냈고, 플랑시는 수정된 요구 사항을 민종묵에게 보냈다. 이전의 조건과 다른 점은 1항과 6항으로, 1항에서는 민정식의 감봉 소식을 조보에 게재하는 것을 삭제하는 대신에 왕명(王命)으로 민정식을 견책(譴責)하는 서한을 발송하도록 했다. 약탈당한 물건이 대부분 반환되었으므로 6항에서는 피해 보상 요구 대신에 외국인을 학대해선 안 된다는 내용과 함께 조불조약의 조항들을 적은 포고문을 경상도 전역에 게시하도록 했다. 민종묵은 플랑시의 요구 사항을 받아들임으로써 협상은 마무리되었다.
4월 10일에 플랑시는 자신의 무례함과 과오를 인정하는 민정식의 서한을 받았다. 이후 4월 21일에 로베르는 대구에서 보낸 호위대와 함께 서울을 떠나 30일 대구에 도착하였다.
의의 및 평가
협상이 교착 상태였을 때 민종묵은 뮈텔에게 중재를 요청했고 뮈텔은 프랑스 공사를 설득함으로써 합의점을 찾을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조선 정부 관리들은 뮈텔의 영향력을 인정하게 되었고, 뮈텔은 높아진 자신의 위상을 사목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참고문헌
단행본
- 『구한국 외교문서』 19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1969)
- 『프랑스 외무부 문서』 2 (국사편찬위원회, 2003)
- 『프랑스 외무부 문서』 4 (국사편찬위원회, 2005)
- 『프랑스 외무부 문서』 5 (국사편찬위원회, 2006)
- 『뮈텔 주교일기』 1 (한국교회사연구소 편역, 2009)
논문
- 양인성, 「1891년 대구 로베르 신부 사건 연구」 (『교회사연구』 44, 한국교회사연구소, 2014)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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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조선 고종 23년(1886)에 조선과 프랑스가 수교와 통상을 목적으로 맺은 조약. 프랑스는 조선에 천주교를 포교할 목적으로 여러 차례 국교를 맺고자 하였으나, 종교 문제로 인한 마찰과 오해로 다른 나라보다 늦어지자, 전권 위원 코고르당(Cogordan)을 파견하여 조인을 완료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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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맡은 임물 각 지방에 머무르면서 일반 행정 사무를 맡아보는 고급 공무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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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본당 안에 사제가 사는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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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목적지까지 보호하여 운반하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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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 프랑스의 가톨릭교 신부(1854~1933). 파리 외방전 교회(外邦傳敎會) 소속으로, 1880년에 내한하였다가 1890년에 조선 주교(主敎)로 다시 내한하여 명동 성당 따위의 여러 성당과 신학교를 창립하였고, 한국 천주교사의 자료 수집에도 힘썼다. 저서에 ≪한국 순교사≫가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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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성이 다른 일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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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명성 황후’를 낮잡아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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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구한말에, 외교 사무를 맡아보던 관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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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허물이나 잘못을 꾸짖고 나무라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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