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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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천주교
인물
해방 이후 경성천주교회신학교 경리신부, 소사본당 주임신부 등에 서임된 사제. 신부.
이칭
이칭
신 마르코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3년(고종 30)
사망 연도
1978년
출생지
경기도 가평
관련 사건
소사성당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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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경성천주교회신학교 경리신부, 소사본당 주임신부 등에 서임된 사제. 신부.
개설

경기도 가평 출신으로 서울 용산의 예수성심신학교를 졸업하고 1920년 사제로 서품되어 평양, 진남포, 재령, 해주, 개성, 춘천, 부천 등지에서 본당 사목과 학교 교육을 담당하던 천주교 사제이다.

생애

1983년 3월 10일 경기도 가평군에서 출생하여 강원도 풍수원 성당에 다녔다. 부친 신두휴, 둘째 형 신비우가 대를 이어 공소회장을 지낸 구교우 집안에서 성장하여 엄격한 신앙교육을 받았다. 1905년 서울 용산의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하여 라틴어, 스페인어, 지리, 산수, 역사, 한문, 철학, 신학 등을 배웠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신학교 내에서 몇몇 학생들과 만세 시위에 가담하여 교구장 뮈텔 주교로부터 처벌을 받았다. 1920년 9월 18일 명동성당에서 서울대목구 드브레(Devred, 兪) 주교로부터 사제(司祭)로 서품된 후 평안도, 황해도, 경기도, 강원도 등지를 두루 다니며 본당 사목활동과 본당 부설 학교의 교육을 담당했다.

활동사항

서품 직후 1개월간 평양본당의 보좌신부로 재임하다가 1920년 10월 진남포본당의 제3대 주임신부로 나아갔다. 이후 황해도의 재령, 신천, 해주 등지의 본당에 부임하였는데, 1921년 재령본당 제3대 본당신부로 부임 후 9년간 재임하면서, 산하 17개 공소 600명의 교우들을 사목하면서 프랑스제 종(鍾)을 들여와 설치하고 성당 부근의 야산을 매입 개간하여 포도, 사과, 앵두 등을 심는 과수원을 조성했다. 1931년 해주본당 제5대 본당신부로 부임하여 지역 개신교 찬양대의 활동에 자극을 받아 해주고보 학생들을 중심으로 본당 성가대를 발족시켰다. 1935년 경기도 개성본당, 1942년 감목대리로 춘천본당에서 활동하다가 1945년 경성천주교신학교 경리신부로 옮겼다. 1949년 소사성당 제2대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성당 신축기금을 마련하던 중에 6·25전쟁을 맞아 부산까지 피난 갔다가 돌아온 후 폭격으로 불탄 임시성당을 복구했다. 자신이 직접 농사를 지어 번 40만 원을 기금으로 삼아 인근 미군 부대와 은인들의 원조를 받아 1954년 11월 28일 114평의 성당을 준공하여 당시 서울대목구장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의 주례로 축성식을 거행했다. 1955년 성가보육원을 유치했으며, 1956년 소명가정기술학교를 설립하여 초대 교장으로 봉직했는데, 이 학교는 후에 소명여자중고등학교로 바뀌어 성가회에서 인수하여 운영하였다. 1959년 성가양로원을 설립했고, 1960년 성당 내에 성가수녀원 소사분원을 설치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 가지 못하는 소년들을 위한 야간학교도 개설하여 지역사회의 청소년 교육에도 일조했다. 1960년 10월 20일 소사읍 소사 2리(현 부천시 원미구 심곡동 489번지)에 현대식 성당을 신축하여 본당을 이전한 뒤 현직에서 은퇴하고, 1978년 별세하였다.

참고문헌

『한국가톨릭대사전』(대사전편찬위원회, 한국교회사연구소, 1985)
『부천시사』(부천시사편찬위원회, 2002)
집필자
원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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