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5년에 완성된 이 책에는 송대와 원대의 성리학자 120여 명의 학설을 채택하였으며, 전체가 7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구성은 70권 중에 25권이 송대 학자의 중요한 저술을 수록한 것이고, 45권이 주제별로 여러 학자의 학설을 분류, 편집한 것이다.
명나라 성조가 『성리대전』을 편찬하게 한 것은 『사서대전(四書大全)』·『오경대전(五經大全)』을 편찬하게 한 것과 같이 경전과 성리설에 관한 이론을 집대성함으로써 사상적 통일화를 도모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성리대전』의 경우에서는 편집 체계의 짜임새가 부족하고 졸속한 점이 많다는 비판도 일어났지만, 방대한 집대성으로 성리학의 권위적 체계를 확보하여 사상과 교육에서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에 『성리대전』이 처음 전래된 것은 1419년(세종 1)에 『사서오경대전』과 함께 명나라로부터 수입하면서다. 이 해는 바로 『성리대전』이 처음 간행된 지 불과 4년 뒤 일이다. 『성리대전』과 『사서오경대전』은 명나라 성조의 하사품으로 받은 것이지만, 세종은 이 책들을 국내에 널리 전파하기 위해 경상 감사 최부(崔府)와 전라 감사 심도원(沈道源)과 강원 감사 조종생(趙從生)에게 명해 이 책들을 다시 국내에서 간행하게 하였다.
먼저, 저술과 그 주석을 수록한 것으로는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太極圖)』와 『통서(通書)』, 장재(張載)의 『서명(西銘)』과 『정몽( 正蒙)』, 소옹(邵雍)의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주희(朱熹)의 『역학계몽(易學啓蒙)』·『가례(家禮)』·『율려신서(律呂新書)』, 채침(蔡沈)의 『홍범황극내편(洪範皇極內篇)』이 있다.
또한, 주제별로 성리학의 분류 체계를 이룬 것은 사전적 편찬이라 할 수도 있다. 이 주제별 분류의 큰 주제가 되는 제목은 이기(理氣, 2권)·귀신(鬼神, 1권)·성리(性理, 9권)·도통(道統)·성현(聖賢, 1권)·제유(諸儒, 4권)·학(學, 14권)·제자(諸子, 2권)·역대(歷代, 6권)· 군도(君道, 1권)·치도(治道, 4권)·시(詩)·문(文, 1권)의 13주제이다.
특히 성리학의 핵심 분야인 「이기」와 「성리」에 포함된 작은 항목들을 보면, 먼저 「이기」에는 총론·태극·천지·천도(天度)·천문·음양·보행·시령(時令)·지리의 9항목이 제시되었다.
다음으로 「성리」에는 성명(性命)·성(性)·인물지성(人物之性)·기질지성(氣質之性)·심(心)·심성정(心性情)·도(道)·이(理)·덕(德)·인(仁)·인의(仁義)·인의예지(仁義禮智)·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성(誠)·충신(忠信)·충서(忠恕)·공경(恭敬)의 17항목이 열거되었다.
한편, 『성리대전』은 경연(經筵)에서 강의되기도 하고, 널리 보급되면서 성리학의 수준을 급속히 발전시켰다. 단종 때 김반(金泮)은 『성리대전』 등의 문헌에서 이론을 채택, 그의 스승 권근(權近)이 지은 『입학도설(入學圖說)』을 보완한 『속입학도설(續入學圖說)』을 저술하였다.
이황(李滉)이 저술한 『서명고증강의(西銘考證講義)』·『계몽전의(啓蒙傳疑)』는 『성리대전』에 수록된 문헌의 주석이요, 『송계원명이학통록(宋季元明理學通錄)』은 『성리대전』의 권39에서 권42 사이의 「제유편(諸儒篇)」을 보완, 완성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이황은 남언경(南彦經)과 『황극경세서』 관물내편(觀物內篇)에 관해 토론할 때에도 『성리대전』에 수록된 체제와 비교, 검토하고 있다. 16세기 이후 조선조의 성리학자들 사이에는 『성리대전』이 성리학 연구의 백과사전적 문헌이었으며, 이 문헌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다.
김세필(金世弼)은 「경연성리대전진강관초선인원(經筵性理大全進講官抄選人員)」을 기록하였고, 이구(李構)의 「간성리대전(看性理大全)」, 임영(林泳)의 「성리대전」, 한경의(韓敬儀)의 「윤송성리대전성학집요등서(輪誦性理大全聖學輯要等書)」 등 단편적 논문이 있다.
또한 김기대(金氣大)의 「성리대전론성편변( 性理大全論性篇辨)」, 이상정(李象靖)의 「독성리대전차의(讀性理大全箚疑)」, 김대진(金垈鎭)의 「성리대전기의(性理大全記疑)」 등 변론들을 볼 수 있다.
『성리대전』의 체제를 직접 응용한 저술이 있다. 18세기 후반의 실학자 황윤석(黃胤錫)은 『이수신편 理數新篇』을 저술하여 백과사전적 지식의 집성을 도모하면서 『성리대전』의 항목과 매우 유사한 항목들을 열거하였다.
19세기 후반 영남의 대표적 성리학자인 이진상(李震相)은 『이학종요(理學綜要)』를 저술, 성리학의 논쟁점을 매우 세련된 체계로 집대성하였다. 이 『이학종요』는 『성리대전』의 권26에서 권37 사이의 「이기」·「성리」에 관한 문제들을 훨씬 정밀하게 체계화시켰다는 점에서 한층 높은 수준으로 심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성리대전』에 수록된 『태극도』·『통서』·『서명』·『정몽』·『황국경세서』·『역학계몽』·『가례』·『율려신서』·『홍범황극내편』 등 독립된 저술들에 대한 토론과 연구는 조선시대를 통해 광범하게 이루어졌다.
「이기」·「성리」 등 성리학의 개념 문제 이외에도 도통 문제(道統問題)는 조선조 도학(道學)의 이념적 기초로 강조되어, 이이(李珥)의 『성학집요(聖學輯要)』에도 「성현도통(聖賢道統)」편이 큰 비중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성리대전』에 포함된 「군도」·「치도」의 문제는 도학의 경세론(經世論)으로서 매우 중요한 영역으로 발전되었다.
이이의 『동호문답(東湖問答)』을 비롯, 김평묵(金平默)의 『치도사의(治道私議)』 등 무수한 도학적 경세론의 저술로 나왔다. 송병선(宋秉璿)의 『무계만집(武溪漫輯)』은 「치도」·「치법」·「치교」의 체제로 조선시대 도학자의 경세론을 정리하는 데 응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