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자경(子敬). 부원군 성여완(成汝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참판 성석인(成石因)이고, 아버지는 성엄(成揜)이며, 어머니는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 김약항(金若恒)의 딸이다.
1414년(태종 14) 진사시에 합격하고, 1419년(세종 1)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사헌부감찰·사간원정언·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이조·예조의 정랑, 사헌부의 장령(掌令)·집의를 지내고, 승정원의 동부승지와 도승지를 거쳐 이조참판, 외관으로 경상도관찰사, 병조·형조의 참판, 한성부판사, 개성부유수에 올랐으나 말년에 병으로 사임하고 지중추원사에 임명되었다.
나이 53세로 일생을 마쳤다. 사람됨이 관대하여 사소한 예절에 구애받지 않고 겉과 속이 한결같았다. 세종은 성염조를 충성스럽고 순박하며 정직하다 하여 칭찬하였다. 그러나 성염조의 성질은 절제심이 없어 경상도감사 때에 이른 데마다 잔치를 벌이고 술에 취하여 그 직임을 다하지 못하였다.
또한, 본래 병이 많아 도내를 순력(巡歷)하지 못하였고, 세금을 거두는 데 가혹하여 명성이 떨어졌다. 그리고 재산을 모으는 데 힘을 써서 많은 비방을 받았다. 아들 성임(成任)·성간(成侃)·성현(成俔)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글로 이름이 있다. 시호는 공혜(恭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