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자수(自受). 할아버지는 성여신(成汝信)이고, 아버지는 수사(水使) 성박(成鎛)이다.
1590년(선조 23)에 무과에 급제하고 임진왜란 때 선전관으로서 왕을 호종하였다. 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에 발탁되고 공조좌랑·해주판관을 역임하였다.
1604년에 북도우후(北道虞候)를 제수받고 특별히 자금은주자(紫金銀胄子)를 하사받았다. 여진인 아비귀패가면(阿比鬼孛可免) 등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우고 1606년 전라도병마절도사·훈련원도정·안변부사·길주목사를 거쳐 통제사가 되었는데 그동안 근무 태만과 방군징포(放軍徵布)가 심하다 하여 여러 번 탄핵을 받았다.
1613년(광해군 5) 서로방어사(西路防禦使), 1618년 평안도병마절도사·함경도순변사(咸鏡道巡邊使)를 역임하고, 1620년 호조판서에 올랐다. 1622년 함경남도병마절도사로 있을 때 도원수 한준겸(韓浚謙)이 인조반정에 가담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이를 거절하고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갔다. 1623년 인조반정 후 황현(黃玹)의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장살되었다. 이듬해 이귀(李貴)의 상소로 복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