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우길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후기 훈련원도정, 안변부사, 길주목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자수(自受)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623년(인조 1)
본관
창녕(昌寧)
주요 관직
훈련원도정|안변부사|길주목사
관련 사건
임진왜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후기 훈련원도정, 안변부사, 길주목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자수(自受). 할아버지는 성여신(成汝信)이고, 아버지는 수사(水使) 성박(成鎛)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90년(선조 23)에 무과에 급제하고 임진왜란 때 선전관으로서 왕을 호종하였다. 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에 발탁되고 공조좌랑·해주판관을 역임하였다.

1604년에 북도우후(北道虞候)를 제수받고 특별히 자금은주자(紫金銀胄子)를 하사받았다. 여진인 아비귀패가면(阿比鬼孛可免) 등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우고 1606년 전라도병마절도사·훈련원도정·안변부사·길주목사를 거쳐 통제사가 되었는데 그동안 근무 태만과 방군징포(放軍徵布)가 심하다 하여 여러 번 탄핵을 받았다.

1613년(광해군 5) 서로방어사(西路防禦使), 1618년 평안도병마절도사·함경도순변사(咸鏡道巡邊使)를 역임하고, 1620년 호조판서에 올랐다. 1622년 함경남도병마절도사로 있을 때 도원수 한준겸(韓浚謙)이 인조반정에 가담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이를 거절하고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갔다. 1623년 인조반정 후 황현(黃玹)의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장살되었다. 이듬해 이귀(李貴)의 상소로 복관되었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인조실록(仁祖實錄)』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