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거대한 화강암의 동북쪽 면을 다듬고 삼존불상과 여래좌상을 조각하였다. 삼존상은 중앙에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하고 좌우에 각각 관음보살(觀音菩薩)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을 협시로서 배치하였다. 이 삼존의 오른쪽[向左]에 또 하나의 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삼존 모두 넓은 원형의 두광(頭光)을 갖추고 있다. 본존인 아미타불은 불꽃무늬가 조각된 몸 전체를 감싸는 배모양 광배를 지녔다. 머리카락을 표현하지 않은 머리에는 육계(肉髻)가 높이 솟아 있다.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은 마멸로 인하여 윤곽이 희미하나, 눈·코·입 등이 얼굴 중앙으로 몰려 있다. 양쪽 귀는 위쪽은 머리에 가려 보이지 않으며, 타원형의 구멍이 뚫린 귓밥 부분만이 길게 늘어져 있다.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는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리로 평행한 옷자락 무늬가 흘러내리고 있다. 가슴 부분에는 속옷을 묶은 띠 매듭이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가지 주목되는 것은 오른쪽 어깨 부분에 약간 걸쳐진 옷자락이다.
왼손은 왼쪽 무릎과 팔 부분의 암석이 파손되어 손 모습을 잘 알 수 없으나 오른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가슴 부분으로 들어올려 설법인(說法印)을 하고 있다. 본존의 무릎 아랫부분이 파손되어 잘 드러나지 않지만, 오른쪽 무릎 밑에 단엽복판(單葉複瓣)의 연화문이 약간 남아 있는 점으로 보아 원래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하였던 것 같다.
왼쪽 협시보살인 관음보살은 본존을 향하여 얼굴을 돌리고 연화좌 위에 앉아 있다. 머리에는 보관을 썼고, 왼손에는 비스듬히 연꽃 봉오리를 들고 있다. 오른손은 거의 눈 높이까지 들어 연봉을 받들어 본존을 향하고 있다. 얼굴은 윤곽이 뚜렷하며 눈매만이 확실할 뿐 그 밖의 부분은 파손되어 알 수 없다.
천의는 통견으로 가슴 부근에 큼직한 천의를 묶은 띠가 표현되었다. 무릎 중앙에 평행의 뚜렷한 옷주름 선이 4, 5선 가량 보일 뿐 나머지 옷주름은 오른쪽 무릎 부분이 크게 파손되어 그 모습을 알 수 없다. 복련(覆蓮 : 아래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의 연화좌는 큼직한 단엽의 연화문을 중심으로 좌우로 단판연화문(單瓣蓮華文)을 장식하였다.
오른쪽 협시보살인 대세지보살은 역시 본존을 향하여 앉아 있는데, 왼쪽 보살과 동일한 보관을 쓰고 있다. 이 보살은 네모나고 각진 얼굴과 떡 벌어진 어깨로 인하여 건장한 느낌을 주지만 팔이나 무릎 등의 윤곽은 부드러워 양감(量感) 있고 풍만한 느낌을 준다.
대의는 통견이며 가슴에는 띠가 뚜렷하다. 배 부분에는 부채꼴의 옷주름이 넓게 퍼져 있어 통일신라시대 석불좌상들의 옷주름과 유사함을 보여 준다. 왼손은 연봉을 들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 부근에 대어 본존 쪽을 향하게 하고 있다.
이 보살상에서 특이한 것은 앉은 모습이다. 두 발을 가운데로 향하여 교차하고 앉는 이른바 교각자세(交脚姿勢)로서, 이는 우리 나라에서는 드문 예이다. 중국의 용문석굴(龍門石窟)이나 운강석굴(雲岡石窟)에서 유행하던 자세이다. 대좌는 연화좌로서 관음보살의 대좌와 동일한 형식이다.
이 삼존불상의 오른쪽[向左]에 새겨진 또 하나의 여래좌상은 삼존상과 같은 모양의 두광을 갖추고 정면을 향해 앉아 있는 단독상이다. 소발의 머리에는 육계가 뚜렷하며, 원만한 얼굴의 윤곽도 뚜렷하나 각 부분은 마멸되었다. 통견 대의는 삼존상의 본존과 같이 오른쪽 어깨에 살짝 옷자락을 걸쳤는데, 옷주름은 굵고 뚜렷한 각선으로 조각하여 역동감있다.
연화좌 위에 올려놓은 무릎 부분에도 평행의 옷주름 선이 조각되었으며, 이 옷자락은 두 무릎을 덮고 아래까지 흘러내리고 있다. 이 여래상 역시 특이한 자세를 하고 있다. 오른발은 내려 연화 위에 올려놓고 왼발은 발끝을 아래로 향하게 하여 유희좌세(遊戱坐勢)를 취하였다. 대세지보살의 교각자세와 함께 우리 나라에서는 예가 드문 특이한 자세이다.
이 불상군은 조각 수법이 평면적이어서 마치 선각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불상들의 형태는 전체적으로 딱딱한 느낌이 들지만 사실미와 긴장미가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특징은 대세지보살의 교각자세 등과 함께 새로운 당나라의 불상 양식을 수용한 것으로 보이며, 조성 연대는 7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