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중길(仲吉). 아버지는 현감 성호(成灝)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순위(忠順衛)로 창녕에서 창의(倡義) 기병(起兵)하여 창녕의 가장(假將)이 되었다.
별장 조열(曺悅), 소모관(召募官) 성안의(成安義)와 함께 낙동강 좌안지방의 여러 고을의 방위와 수복을 위하여 여러 번 공을 세웠다. 이 해 8월에는 조열 등과 병사 1,000여 인을 이끌고 창녕에서 적군을 공격, 종일 분전하여 적을 물리쳤다.
이 공으로 웅천현감이 되고 다시 훈련원정이 되었다. 병조좌랑에 추증되고 형조참의에 가증(加贈)되었다.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