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임씨(任氏). 아버지는 영인후(寧仁侯) 왕진(王稹)이다. 왕실과의 동성(同姓)을 피하기 위하여 임씨라 하였으나 누구의 성을 따랐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인종(仁宗)의 비 공예태후(恭睿太后)가 임씨이고, 그 딸인 창락궁주(昌樂宮主)가 신안후(信安侯) 왕성(王珹)에게 출가하여 비의 할머니가 되는 것으로 보아 외증조모(外曾祖母)인 공예태후의 성을 따랐을 가능성이 있다. 영인후는 현종(顯宗)의 6세손이며, 비와 희종과의 관계는 13촌이 된다. 그러나 모계로는 왕실과 밀착되어 있었으니 인종녀가 비의 할머니이고 명종(明宗)의 딸이 어머니가 되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1211년(희종 7) 함평궁주(咸平宮主)로 봉해졌다. 자녀로는 창원공(昌原公) 왕지(王祉), 시령후(始寧侯) 왕위(王衛), 경원공(慶原公) 왕조(王祚), 대선사(大禪師) 경지(鏡智), 충명국사(冲明國師) 각응(覺膺) 등 다섯 명의 왕자, 안혜태후(安惠太后)와 영창(永昌)·덕창(德昌)·가순(嘉順)·정희(貞禧)의 네 궁주(宮主)를 두었다.
죽은 뒤에 성평왕후(成平王后)의 시호가 추증(追贈)되고, 1253년(고종 40) 정장(貞章)의 시호가 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