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예조좌랑, 병조좌랑, 고산찰방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숙종 즉위 직후 남인 윤휴(尹鑴) 등이 집권하자 두문불출하다가,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으로 정언에 복직하였다. 1682년에는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이어서 장령·지평을 거쳐 죽산부사 재임 시에는 선정을 베풀어 송덕비가 여러 개 세워졌다.
1684년 사간으로 있으면서 남인 허목(許穆)·홍만조(洪萬朝)·이현조(李玄祚) 등의 죄를 논했고 이어서 동부승지·좌승지·판결사·형조참의·공조참의를 역임하였다. 1688년에 여주목사로 나갔다가 이듬해 기사환국으로 노론이 쫓겨나자 다시 두문불출하였다.
1694년 갑술옥사 뒤 민비(閔妃: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 민씨)가 복위되었으나, 남구만(南九萬) 등 소론파들의 집권으로 관직에 적극적인 참여는 못하고 다만 판결사에 제수되었다. 당쟁이 극심하여 노론으로서의 30여 년 관직 생활이 평탄하지는 못하였다. 개인적인 인품은 후덕하고 애군(愛君)·효친이 지극했다고 한다.
참고문헌
- 『현종실록(顯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한수재집(寒水齋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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