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소공대비

  • 예술·체육
  • 유적
  • 조선 전기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에 있는 조선전기 문신 황희 관련 대(臺).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기설 (관동대학교, 민속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삼척 소공대비 미디어 정보

삼척 소공대비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에 있는 조선전기 문신 황희 관련 대(臺).

내용

임원항(臨院港)에서 서쪽 산의 능선을 타고 2㎞ 올라간 지점의 소공령(召公嶺)에 돌을 모아 돋아놓은 대이다. 소공대는 1423년(세종 5)에 황희(黃喜)를 중국의 소공(召公)과 같은 정도의 은인이라 하여 백성들이 만든 것이다.

당시에 관동지방에 식량이 크게 부족하여 백성들이 굶어죽게 되었는데 당시 관찰사의 비행이 많아 이를 바로잡고자 황희가 부임하여 백성들을 잘 구호하고 이 고개에서 쉬었다 한다.

1516년(중종 11) 황희의 현손(玄孫: 4대손) 황맹헌(黃孟獻)이 강원도관찰사가 되어 소공대의 사실을 적은 소공대비(召公臺碑)를 세웠으나 훗날 비바람에 쓰러져 부러지고 말았다. 현재의 소공대비는 1578년(선조 11) 황희의 6대손 황정식(黃廷式)이 삼척부사에 임명되었을 때 옛 터에 다시 건립한 것이다. 소공령은 현재의 국도에서는 떨어져 있지만, 옛날에는 이 고개를 넘어야만 인마(人馬)가 내왕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름을 와현(瓦峴)이라 하였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