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고경(考卿). 우참찬 손중돈(孫仲暾)의 현손이다.
어려서는 문학에 뜻을 두었으나 장성하여서는 무과에 급제하였다. 1618년(광해군 10)에 광해군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서궁(西宮)에 유폐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농사일에 종사하다가 다시 관직에 나아가 1634년(인조 12) 남포현감이 되었다. 이 때 도체찰사(都體察使) 김류(金瑬)로부터 치적이 별로 없다 하여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왕이 남한산성에 피신하였다는 말을 듣고 이에 따르고자 하였으나, 이천(利川)에 이르러 길이 막혀 나아가지 못하였다. 이에 쌍령(雙嶺)에 주둔하고 있는 경상좌병사 허완(許完)에 투신하여 막하에서 활동하다가 쌍령싸움에서 전사하였다.
훈련원정(訓鍊院正)을 증직받았고, 1784년(정조 8)에 정려가 세워졌으며 1816년(순조 16) 8월에 충절로써 가증(加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