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중돈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이조판서, 대사헌,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시호경절(景節)
  • 우재(愚齋)
  • 태발(泰發)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중종반정
  • 본관경주(慶州)
  • 사망 연도1529년(중종 2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공조판서|이조판서|대사헌|대사간
  • 출생 연도1463년(세조 9)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찬희 (한국교육개발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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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이조판서, 대사헌,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태발(泰發), 호는 우재(愚齋). 손등(孫登)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 병조참판 손사성(孫士晟)이고, 아버지는 계천군(鷄川君) 손소(孫昭)이며, 어머니는 유복하(柳復河)의 딸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83년(성종 14)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489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봉교(藝文館奉敎)를 거쳐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역임하였다. 1497년(연산군 3) 양산군수, 이어 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사복시정(司僕寺正)으로서 간관(諫官)들이 거의 다 쫓겨날 때 파직당하였다.

1506년 중종반정 직후에 상주목사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어 1509년(중종 4)에는 표리(表裡) 1습(襲)을 하사받았고, 1512년에는 좌승지로 승진하였다. 이어 공조·예조 참판을 역임하다가 1517년에는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뒤에 공조판서·이조판서·세자시강원빈객(世子侍講院賓客)을 지낸 뒤 도승지를 세 번, 대사헌을 네 번 지냈으며, 경상도·전라도·충청도·함경도의 관찰사를 지내고, 우참찬에 이르렀다. 중종 때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경주의 동강서원(東江書院), 상주의 속수서원(涑水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경절(景節)이다.

참고문헌

  • - 『중종실록(中宗實錄)』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 『번암집(樊巖集)』

  • - 『묵재집(默齋集)』

  • - 『해동잡록(海東雜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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