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홍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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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국왕의 어영과 전주사고의 실록을 정읍 용굴암에 옮겨 보관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임진왜란
  • 본관밀양(密陽)
  • 사망 연도1600년(선조 33)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537년(중종 3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문기 (경산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정읍 남천사 정측면 미디어 정보

정읍 남천사 정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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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국왕의 어영과 전주사고의 실록을 정읍 용굴암에 옮겨 보관한 문신.

개설

본관은 밀양(密陽). 부제학 손비장(孫比長)의 종손이다. 이항(李恒)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일찍이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으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 오희길(吳希吉)과 함께 국왕의 어영(御影)과 역대의 전주사고(全州史庫) 소장 실록을 정읍 내장산 용굴암(龍窟庵)에 옮겨 잘 보관하였다.

임진왜란 중 춘추관·성주·충주사고의 실록이 모두 불탔지만, 전주사고의 실록이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손홍록의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뒤에 의주 행궁(行宮)으로 왕을 찾아가 중흥6책(中興六策)의 시무책(時務策)을 건의하여 왕의 포상을 받고, 별제(別提)에 임명되었다.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 남천사(藍川祠)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

  • - 「조선왕조실록의 편찬과 보관」 (신석호, 『사총』5,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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