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남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병조좌랑, 의주판관,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만리(萬里)
  • 서촌(西村)
  • 시호충민(忠愍)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인조반정|정묘호란
  • 본관진천(鎭川)
  • 사망 연도1627년(인조 5)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병조좌랑|의주판관|이조참판
  • 출생 연도1576년(선조 9)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차용걸 (충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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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병조좌랑, 의주판관,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진천(鎭川). 자는 만리(萬里), 호는 서촌(西村). 송세증(宋世曾)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송하(宋賀)이고, 아버지는 봉사(奉事) 송응일(宋應一)이며, 어머니는 박응현(朴應賢)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9년(광해군 1) 생원시에 합격, 활인서별제·의금부도사를 거쳐 1615년에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근무하였다. 그 뒤 병조좌랑으로 있을 때 왕의 노여움을 사서 한때 옥에 갇히기도 하였다. 인조반정 뒤에 강원도도사를 거쳐 의주판관에 임명되었는데,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였다.

이 때 이조에서는 변방고을에 부임함을 꺼린다고 하여 탄핵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영유현령(永柔縣令)으로 부임하였다. 정묘호란이 일어나 후금(後金)의 군대가 침입하자 안주에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손자 송정필(宋廷弼)의 요청으로 정표(旌表)가 세워졌으며, 숙종 때에 안주의 충민사(忠愍祠)에 제향되었으며, 영조 때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뒷날 전공이 크게 인정되어 시호를 충민(忠愍)이라 내리었고, 자손도 서용되었다.

참고문헌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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