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중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후기 대사성, 풍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대사성|풍해도관찰사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손홍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후기 대사성, 풍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1373년(공민왕 22) 6월 응거시(應擧試)로 급제하고, 그 해 9월 정조사(正朝使)인 밀직부사(密直副使) 주영찬(周英贊)을 따라 명나라에 과거를 보러 가다가 풍랑으로 돌아왔다. 이듬해 다시 밀직부사 장자온(張子溫)을 따라 명나라에 들어가 회시(會試)를 보려고 하였으나 도착이 늦어 시험을 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상호군(上護軍)·나주목사(羅州牧使) 등을 역임하였다. 1389년 (공양왕 1) 상호군 겸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로 제수되었으나 나주목사 재임시 청렴하지 못하다는 말이 있었으므로 고신(告身: 사령서)에 서명을 받지 못하였다.

그 뒤 대사성(大司成)을 지냈으며, 1391년에는 일본의 구주절도사(九州節度使: 九州探題) 미나모토[源了浚: 今川了浚]가 포로가 된 남녀 68인을 보내준 데 대한 답례로 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로서 보빙사(報聘使)가 되어 일본에 다녀왔다. 1393년(태조 2) 판교서감사(判校書監事)로서 전에 태조(太祖)가 잠저(潛邸)에 있을 때 그를 보좌한 공으로 대장군(大將軍) 조경(趙卿)과 함께 상을 받았다. 1396년 풍해도관찰사(豊海道觀察使)로서 침입한 왜구를 물리치는 등 공을 세웠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태조실록(太祖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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