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성균관사예, 사헌부장령, 남원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인조반정으로 소환되어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에 오르고 이어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이 되었다.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관서 지방에 어사로 나가 선유(宣諭: 임금의 뜻을 백성들에게 알림)하였다. 그 뒤 성균관의 사예(司藝)·사성, 사헌부의 장령(掌令)과 집의(執義), 홍문관교리·사도시정(司䆃寺正)·사복시정(司僕寺正)을 역임하다가 안동부사로 전보되었으나 그 곳에서 민정을 숙정(肅正: 엄격하고 바름)하고는 사임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어사로서 충청도에서 조운(漕運)을 감독, 세공의 조달에 힘썼다. 돌아와서는 사헌부집의·종부시정(宗簿寺正)을 거쳐 외직으로 남원부사가 되었다. 부사 재임 때 작폐를 일삼던 도적을 소탕하여 어사가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추천, 임명했으나 사고로 사퇴하였다.
1629년에 다시 전라도관찰사에 특임되었으나, 모함으로 물러났다. 그 뒤 병조참지·예조참의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퇴하였다. 성품이 강직하고 청백하였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계곡집(谿谷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여산송씨세보(礪山宋氏世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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