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병조정랑, 형조정랑, 군자감첨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포천 현감 재직 당시 전정(田政)이 문란하여 겸병(兼倂)의 풍조가 만연했었는데, 송선이 법을 엄하게 하여 단속하자 토호들이 이를 꺼려하여 현감 부임 3개월 만에 파직되었으나 백성들이 유애비(遺愛碑)를 세워 덕을 기렸다. 다시 강음현감과 사헌부감찰을 거쳐 운봉현감이 되었다.
1589년 기축옥사가 일어나 이발(李潑)·이길(李洁) 형제가 죽음을 당하자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감히 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이에 송선이 이들을 염해 주었는데, 이 일로 그만 파직되었다.
다음 해 당진현감이 되었다. 임진왜란 중에는 기근의 구제를 잘해 명망을 얻었다. 뒤에 호조좌랑·병조정랑·형조정랑·군자감첨정·곡산군수·단양군수·재령군수 등을 지냈다.
1613년(광해군 5) 이천부사가 되었으나 연로함을 이유로 사퇴하고 개천(開天)에서 10여 년을 은거하면서 양지정(養志亭)이라는 정자를 지었다. 정묘호란 때에 청풍으로 피난하여 수촌(水村)에서 우거하다 죽었다. 글씨를 잘 썼다고 한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기언(記言)』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