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남양(南陽)송씨 문중의 송제(宋悌)와 그의 부인 열녀 능성(綾城)구씨, 그리고 1616년(광해군 8) 여진족과의 싸움에서 순절한 송제의 조카 송덕일(宋德馹)의 충렬을 기리기 위하여 1797년(정조 21) 정려를 명받아 건립한 것이다. 1920년과 1979년의 중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송제의 자는 유칙(維則), 호는 매와(梅窩)로 임진왜란 중인 1593년(선조 26) 당진군수로서 절도사 황진의 막하로 들어가 성주(星州)싸움에서 적을 대파하였고 이어 진주성에 들어가 수성하다가 전사하였다. 정조 때 호조참의를 추증받았고 정려를 명받았다.
송덕일은 자는 치원(致遠), 호는 조은(釣隱)이다. 무예에 뛰어나 1585년(선조 18) 무과에 장원하여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훈련첨정으로 임금의 피난길을 호위하여 호위장군(虎威將軍)의 호를 받았으며, 1597년 정유재란 때 진도군수로서 이순신의 막하에 들어가 명량해전에서 큰 공을 세웠다.
현재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으로 내부에 명정판액 등 7개의 현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