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홍문관박사, 사간원정언, 예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 때 덕원부사 안상(安瑺) 등이 무죄인데 파직시켰다는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파직당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6월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이 되고, 시강관(侍講官), 홍문관의 부응교(副應敎)·부교리, 사간원의 사간·집의(執義), 홍문관응교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579년 승지로서 소위 이수(李銖)의 옥사에서 이를 석방하라는 왕의 명령을 철회할 것을 청하다가 다시 파직당하였다. 1583년 대사간이 된 뒤, 동·서 분당(分黨) 이후에는 동인의 중진으로서 활약하였다.
이 때 헌납 유영경(柳永慶), 정언 정숙남(鄭淑男), 도승지 박근원(朴謹元),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허봉(許篈)과 함께 이이(李珥)를 탄핵하다가 장흥부사로 좌천되고, 다시 회령에 유배되었다.
강계·갑산에 귀양간 박근원·허봉과 아울러 세칭 계미삼찬(癸未三竄)이라 하였다. 이 때 조헌(趙憲)을 비롯, 전라도·해주 등지의 유생들로부터 맹렬한 배척을 받았다. 1585년 영의정 노수신(盧守愼)의 상소로 풀려났다.
참고문헌
- 『명종실록(明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상촌집(象村集)』
- 『기언(記言)』(허목)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조당쟁사연구』 (강주진, 서울대학교출판부,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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