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연문장전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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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연문장전산고
오주연문장전산고
조선시대사
문헌
조선후기 실학자 이규경이 조선과 청나라의 여러 책들의 내용을 정리하여 편찬한 사전. 백과사전.
내용 요약

『오주연문장전산고』는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이 조선과 청나라의 여러 책들의 내용을 정리하여 편찬한 사전이다. 서두에 이규경의 서문이 있다. 권1에서 권60에까지 총 1,417항목으로 구성되었다. 모든 항목을 변증설로 처리해 고증학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학문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또 역사·천문·지리·불교·서학·병법·광물·초목 등에 관한 내용을 망라하였다. 이처럼 방대한 항목을 다룰 수 있었던 것은 청나라와 서양학문의 수용이 큰 역할을 하였다. 『오주연문장전산고』는 조선 시대 백과사전을 대표하는 책으로 『지봉유설』 등의 흐름을 계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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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실학자 이규경이 조선과 청나라의 여러 책들의 내용을 정리하여 편찬한 사전. 백과사전.
내용

60권 60책. 필사본. 원래 더 거질(巨帙)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60권 60책의 필사본을 최남선(崔南善)이 소장해 왔다. 그러나 이 필사본마저 6. 25로 소실되었으며, 다행히 최남선 소장본을 필사한 책을 규장각에서 보관해 왔다.

규장각에는 현재 2종의 『오주연문장전산고』가 소장되어 있다. ‘古0160-13’본과 ‘규5627’본이 그것으로 ‘古0160-13’본은 60책의 완질이며, ‘규5627’본은 1∼4권이 낙질된 채로 56책만이 남아 있다.

이 책의 앞에는 이규경의 서문이 있다. 이규경은 정조대에 규장각검서관으로 문명을 떨친 이덕무(李德懋)의 손자이자, 역시 규장각검서관이었던 이광규(李光葵)의 아들로서, 가학(家學)의 전통은 이 책의 저술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책의 부분 부분에는 이규경이 충주 · 서천충청도 일대의 농촌에서 생활한 모습이 나타나는데, 각 지역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기록한 글들을 모은 것으로 이해된다. 서문에서 저자는 “명물도수(名物度數)의 학문이 성명의리지학(性命義理之學)에는 미치지 못하나 가히 폐할 수 없다”고 밝혀 다양한 학문과 사상을 포괄하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 책은 권1의 「십이중천변증설(十二重天辨證說)」에서 권60의 「황정편정변증설(黃精偏精辨證說)」에 이르기까지 총 1,417 항목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으로 구성하고, 모든 항목을 변증설로 처리해 고증학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학문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또 역사 · 경학 · 천문 · 지리 · 불교 · 도교 · 서학 · 풍수 · 예제 · 재이(災異) · 문학 · 음악 · 병법 · 풍습 · 서화 · 광물 · 초목 · 어충(魚蟲) · 의학 · 농업 · 화폐 등에 관한 내용을 망라하였다.

내용을 주요한 주제별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성리학에 관한 내용으로는 13경(經)에 대한 주석을 단 것을 비롯해 「 대학변증설」 · 「 소학변증설」 · 「 중용변증설」 · 「 가례변증설」 등이 있다.

불교에 대한 내용으로는 「석교(釋敎)범서(梵書)불경(E0024911)변증설(辨證說)」을 비롯해 「 해동(海東) 불법(佛法)변증설(辨證說)」 · 「 지옥변증설」 · 「 윤회변증설」 등이, 도교에 대한 내용으로는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변증설(辨證說)」 · 「수욕변증설(壽辱辨證說)」 · 「동국도교(東國道敎)본말(本末)변증설(辨證說)」 등이 있다.

성리학, 불교와 도교에 대한 내용에서 저자는 성리학을 우위에 두면서도 불교와 도교의 장점을 취하려는 입장에 있었다. 즉 성리학에서 인륜(人倫)의 도를 찾고, 불교와 도교를 통해 견성(見性)과 명심(明心)을 얻어서 제 사상을 보완하려 하였다.

서양과 서학(西學)에 관한 내용을 담은 항목으로는 「용기변증설(用氣辨證說)」 · 「백인변증설」 · 「지구변증설」 · 「척사교변증설(斥邪敎辨證說)」 등 80항목이 있다. 여기에서는 천주교 뿐만 아니라 천문 · 역산 · 수학 · 수리 · 의약 · 종교 등 다방면에 걸쳐서 언급했으며, 『천주실의(天主實義)』와 『직방외기(職方外紀)』를 비롯한 20여 종의 한역(漢譯) 천주교서적을 참고하였다.

이규경은 서양과 중국문명을 비교해 “중국의 학문은 형이상학(形而上學)의 학문이며, 서양의 학문은 형이하학(形而下學)의 학문”이라고 언급한 뒤 우수한 서양의 기술을 습득할 것을 강조하였다.

한편 역사에 관한 내용도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동국전사중간변증설(東國全史重刊辨證說)」에서는 역사를 정의해 “역사란 나라의 거울이며 옛 것을 드러내고 미래를 여는 것이다. 옛 것을 법으로 삼아 오늘에 비추어 보는 것”이라 하여 역사의 현재적 의미를 강조하였다. 또한 역사를 기록하는 법으로 포폄(褒貶)과 편기(編記)의 2가지를 꼽았다.

중국사에 대한 해박한 고증은 「이십삼대급동국정사변증설(二十三代史及東國正史辨證說)」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 나라의 역사에 대한 항목으로는 「아동고인사적변증설(我東古人事蹟辨證說)」 · 「동국제일인재변증설(東國第一人才辨證說)」 · 「동국전사중간변증설 東國全史重刊辨證說)」 · 「삼국입국변증설(三國立國辨證說)」 · 「동방구호고사변증설(東方舊號古事辨證說)」 · 「 삼한시말변증설」 등이 있다.

이 외에 유구국 · 일본 · 안남( 베트남) · 회부(回部) 등 외국 역사에 관한 내용을 담은 항목도 눈에 띈다. 저자가 외국사에 유구국과 일본 · 안남 등을 포함한 것은 우리 나라와의 문화교류를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생활사에 관한 내용을 다룬 항목으로는, 「물산변증설」 · 「 향도(香徒)변증설(辨證說)」 · 「 속악(俗樂)변증설(辨證說)」 · 「판무변증설(板舞辨證說)」 · 「연희변증설(煙戱辨證說)」 · 「성중선속변증설(城中善俗辨證說)」 · 「 석전(石戰)목봉변증설(石戰木棒辨證說)」 등이 있다. 주로 역대의 물산과 사회풍속 · 음악 등에 관한 내용으로서, 당시 민중들의 삶과 놀이를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농업과 상공업 등 사회경제의 각 분야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중원농구(中原農具)변증설(辨證說)」에서는 선비라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음을 들어 농업이 생명의 근본임을 강조하였다. 「오하전가지변증설(吳下田家志辨證說)」에서는 농가의 월령을 다루었다.

이 외에도 구황식물로서 고구마의 중요성을 언급한 「북저변증설(北藷辨證說)」을 비롯해, 농기구 · 어구에 관한 내용을 담은 「뇌거변증설(耒耟辨證說)」 · 「직구변증설(織具辨證說)」 · 「어구변증설(漁具辨證說)」 등에서는 농어민의 실생활과 관련된 많은 사실들을 고증하였다.

상공업에도 깊은 관심을 보여, 상공업 육성에 의한 부국(富國)과 서양의 과학기술 수용을 적극 주장한 점은 북학파의 학문적 전통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러한 내용을 수록한 항목으로는 「도량형변증설」 · 「화폐변증설」 · 「장시(場市)변증설(辨證說)」 · 「여번박개시변증설(與番舶開市辨證說)」 · 「서양통중국변증설(西洋通中國辨證說)」 등이 있다.

「장시변증설」에서는 전국의 장날을 통일할 것과 투기와 고리대의 폐단이 없는 상업발달을 주장하였다. 「여번박개시변증설」 · 「서양통중국변증설」 등에서는 중국과 서양과의 통교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인 개국통상을 주장하였다.

특히 「여번박개시변증설」에서는 16세기의 학자 이지함(李之菡)이 유구국과의 교섭을 주장한 점을 높이 평가하였다. 이규경의 이러한 적극적인 상업관과 개국통상론은 19세기 중 · 후반의 오경석(吳慶錫) · 유홍기(劉鴻基) · 박규수(朴珪壽) 등 초기 개화사상가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지리학에 대한 항목으로는 「지지변증설(志地辨證說)」과 「만국경위지구도변증설(萬國經緯地球圖辨證說)」 등이 있다. 자연과학 · 병법과 관계된 내용으로는 「자명종변증설」 · 「 조총변증설」 · 「팔진변증설(八陣辨證說)」 · 「용골거변증설(龍骨車辨證說)」 등이 있다.

권말에 부록으로 기록된 『오주서종』은 「신기화법(神機火法)」 · 「신기수법(神機水法)」 · 「박물고변(博物考辨)」으로 구성되었다. 「신기화법」과 「신기수법」은 병기와 진법에 관한 내용을, 「박물고변」은 금속과 보옥(寶玉) 및 약석(藥石)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다.

본서에서 이처럼 방대한 항목을 다룰 수 있었던 것은 조선사회 내부에 축적된 학문적 성과와 함께 청나라와 서양학문의 수용이 큰 역할을 하였다.

당시에는 본서 뿐만 아니라 윤정기(尹廷琦)『동환록(東寰錄)』, 이유원(李裕元)『임하필기(林下筆記)』, 조재삼(趙在三)의 『송남잡지(松南雜識)』, 최한기(崔漢綺)『명남루총서(明南樓叢書)』 등 백과사전류의 책이 대량으로 저술되어 백과사전적 학풍이 큰 흐름을 이루었다.

한편, 본서의 저술에는 학문적 교유관계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이규경이 김정호(金正浩) · 최성환(崔瑆煥) · 최한기 등 당대의 중인층 학자들과 교유한 기록이 있는데, 이러한 점은 중인층이 새로운 사회세력으로 점차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본서는 조선시대 백과사전을 대표하는 책으로 『지봉유설(芝峰類說)』에서 시작해 『성호사설(星湖僿說)』 ·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등의 흐름을 계승하였다. 그리고 당시까지의 각종 사항을 자세히 기록하여서 전통문화의 이해에 큰 도움을 주며, 역사학 · 국문학 · 자연과학 · 예술 · 의학 등 현재의 다양한 분야의 학문연구에도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

또한 이제까지 타율적 근대화와 관련해 지나치게 폄하되어온 19세기 학자들의 학문적 능력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자료적 가치는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항목의 편차가 저자의 정리를 거치지 못한 관계로 일정한 체계 없이 산만해 쉽게 내용을 파악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영인본으로는 1958년 동국문화사(東國文化社), 1982년 명문당(明文堂), 1993년 고전간행회에서 간행한 것이 있다. 이들 책에는 이규경이 군사와 자연과학에 관한 내용을 수록한 『오주서종(五洲書種)』이 합쳐져 있다.

한편 민족문화추진회에서는 1967년에 『오주연문장전산고』 중 경사편(經史篇)만을 뽑아 국역본 5책을 간행했으며, 1982년에는 인사편(人事篇)의 국역본 1책을 간행하였다. 현재 민족문화추진회에서는 『오주연문장전산고』 전 책의 국역사업을 계획해 추진 중에 있다.

참고문헌

「이규경(李圭景)과 그의 박물학」(전상운, 『성신여대논문집』 4·5, 1972)
「이규경(李圭景)의 실학(實學)에 있어서의 전통사상」(윤사순, 『아세아연구』 50, 1973)
「19세기 중엽 이규경(李圭景)의 학풍과 사상」(신병주, 『한국학보』 75,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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