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악(鄕樂)은 통일신라에 당악(唐樂)이 유입되면서 새로운 음악인 당악과 구분하기 위해 우리 음악에 붙여진 명칭이다. 최치원(崔致遠: 857~?)이 지은 한시인 「향악잡영(鄕樂雜詠」을 보면 서역에서 유래한 춤과 음악이 포함되어 있다. 즉, 향악은 우리 고유의 음악뿐 아니라 당악 유입 이전에 전래되어 우리에게 익숙한 서역 음악까지 포함한다.
1116년(예종 11)에 송(宋)에서 아악(雅樂)이 들어와, 고려에는 향악 · 당악 · 아악의 세 갈래 음악이 있었다. 그런데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 음악을 아악 · 당악 · 속악(俗樂)으로 분류하고, 속악에 「무고(舞鼓)」 · 「동동(動動)」 · 「무애(無㝵)」 · 「오관산(五冠山)」 · 「금강성(金剛城)」 · 「처용(處容)」 · 「정과정(鄭瓜亭)」 · 「풍입송(風入松)」 · 「자하동(紫霞洞)」 등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속악은 향악과 동의어로 쓰인 것이다.
그러나 『고려사』 악지의 마지막 항목인 용속악절도(用俗樂節度)에서는 ‘공민왕 21년 정월 을묘에 왕이 인희전에 나아가 제사를 지냈는데 향악 · 당악을 연주하였다’라고 하여, 속악의 범주 아래 향악과 당악을 포함시켰다. 여기서 속악은 향악과 당악을 포함하는 상위 개념으로서, 아악의 대칭어로 쓰인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속악은 두 가지 의미로 쓰였다. 성종대[1469~1494]에 원묘(元廟)인 주1에서 주2과 주3에 「낙양춘(洛陽春)」을 연주하고, 초헌 · 아헌 · 종헌에 각각 「중강령(中腔令)」 · 「풍입송(風入松)」 · 「서경별곡(西京別曲)」 선율에 맞추어 악장을 노래했는데, 「낙양춘」과 「중강령」은 당악, 「풍입송」과 「서경별곡」은 향악이다. 그러나 1471년(성종 2) 7월 5일[丙子] 기록에 ‘문소전에서 당악과 속악을 쓴다’고 하였으니, 여기서 속악은 향악을 뜻한다.
1447년(세종 29) 6월 5일[乙丑] 기록에 당악인 「보허자(步虛子)」 · 「오운개서조(五雲開瑞朝)」 · 「청평악(淸平樂)」 등과 향악인 「정읍(井邑)」 · 주4 · 「만전춘(滿殿春)」 등을 시용속악(時用俗樂)이라 일컫고, 1478년 11월 7일[甲子] 기록에 당악과 향악을 바탕으로 세종 후기에 창제된 신악(新樂)인 「보태평(保太平)」 · 「정대업(定大業)」 · 「여민락(與民樂)」을 속악이라 일컬었다. 즉, 속악은 음악의 한 갈래인 향악의 의미로 쓰이기도 하였고, 향악 · 당악 · 신악을 두루 포함하는 상위 개념으로 쓰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