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

불교
개념
전생에 악한 짓을 많이 한 자가 그 과보로 태어나는 고통스러운 사후세계.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지옥은 전생에 악한 짓을 많이 한 자가 그 과보로 태어나는 고통스러운 사후 세계이다. 지옥 관념은 윤회나 업을 강조하는 불교 및 인도 사상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지옥의 주재자로 알려진 ‘염라대왕’은 범어 야마(yama, 閻魔)에서 유래하였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될 때 서아시아에서 흘러들어온 지옥의 관념이 겹쳐지면서 야마는 지옥의 왕이 되었다. 중국에서는 도교의 영향으로 죽은 자들의 심판관 노릇을 겸하게 되었다. 지옥은 수미산 남쪽에 위치한 염부제라는 대륙의 지하에 있다. 땅 밑으로 16만㎞ 정도 내려가면 아비지옥, 무간지옥 등 팔열지옥과 팔한지옥이 있다.

정의
전생에 악한 짓을 많이 한 자가 그 과보로 태어나는 고통스러운 사후세계.
개설

전생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또한 전생의 행위와 그 과보의 인과관계를 상정한다는 점에서, 지옥 관념은 윤회(輪廻)업(業)을 강조하는 불교 및 인도사상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지옥’은 범어(梵語) 나라카(naraka)의 중국어 번역어 가운데 하나이다.

범어 ‘나라카’는 나락가(捺落迦, 那落迦)로 소리대로 번역되기도 하고, 또는 불락(不樂), 가염(可厭), 고구(苦具) 등, 뜻에 따라 번역되기도 한다. 갑작스런 충격으로 절망에 빠질 때 흔히 ‘나락으로 떨어진 것 같다.’고 표현하는데 이 때 ‘나락’은 범어 나라카를 소리대로 옮긴 말로 의미상 ‘지옥’과 같다.

지옥의 주재자로 알려진 ‘염라대왕’도 그 연원을 파고들어 가면 불교 및 인도사상과 만나게 된다. 원래 ‘염라대왕’은 범어 야마(yama)에서 유래한 말이다. 힌두교의 성전 베다(Veda)의 신 관념에서 야마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 가운데 제일 먼저 죽은 자로 그 덕택에 천국을 맨 처음 발견해서 그곳의 왕이 된다.

중앙아시아를 경유해서 불교가 중국에 전래될 때 중앙아시아 지역에는 서아시아 지역에서 흘러들어 온 지옥의 관념이 성했다. 이 때문에 베다의 야마 관념에 지옥의 관념이 겹쳐지면서 야마는 지옥의 왕이 되고, 중국에 들어 와서는 도교의 영향으로 죽은 자들의 심판관 노릇을 겸하게 된다.

이 단계에서 야마는 ‘염마왕(閻魔王)’ · ‘염마대왕(閻魔大王)’이란 무시무시한 칭호를 얻는다. 이후에 염마왕은 중국의 민속신앙의 영향을 받으며 점점 더 복잡기괴한 모습으로 변모하게 되고, 그것이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우리 나름의 변용을 또 겪게 되어 오늘에 이른다.

인도사상 및 불교의 지옥관

지옥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구사론(俱舍論)』「세간품(世間品)」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구사론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에 수미산(sumeru 須彌山)이 있고, 9개의 산과 8개의 바다가 수미산을 동심원 모양으로 에워싸고 있다고 한다.

8번째 바다 가운데 동서남북으로 4개의 대륙이 있는데, 이 중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곳이 ‘염부제(閻浮提)’라는 대륙이다. 지옥은 바로 이 염부제의 땅 밑 깊숙한 곳에 있다.

염부제에서 땅 밑으로 16만㎞ 정도 내려가면 아비지옥(阿鼻地獄) 또는 무간지옥(無間地獄)이 있고, 아비지옥의 위로 차례대로 대초열지옥(大焦熱地獄) · 초열지옥(焦熱地獄) · 대규환지옥(大叫喚地獄) · 규환지옥(叫喚地獄) · 중합지옥(衆合地獄) · 흑승지옥(黑繩地獄) · 등활지옥(等活地獄)이 있어, 이를 통틀어 ‘팔열지옥(八熱地獄)’이라고 부른다.

팔열지옥 하나 하나의 옆에는 극한(極寒)에 시달리는 지옥이 하나씩 배치되는데, 이를 ‘팔한지옥(八寒地獄)’이라고 한다. 팔열지옥이나 팔한지옥의 위에, 염부제 땅 밑으로 지하 4,000㎞쯤 떨어진 곳에 지옥의 주재자인 야마(yama, 閻魔)가 머문다. 고대인들이 생각한 지옥은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곳이 아니었다.

우리의 세계의 한 곳에 지옥을 배치시키는, 이러한 지옥관은 한국 고전 문학 곳곳에도 나타나는데,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한편, 지옥의 관념은 윤회 및 업(業) 사상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불교에서 윤회 세계는 지옥 · 아귀 · 축생 · 아수라 · 인간 · 천(天)의 육도(六道)로 대별되는데, 지옥은 그 최하층에 속한다. 생명체는 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끊임없이 업을 짓고, 그 과보로 생사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해 육도의 이곳 저곳에서 태어나고 멸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윤회 관념이다.

그 점에서 보면 지옥이나 천상도 업에 따른 생사고리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불교의 지옥 설화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것이 아비지옥(阿鼻地獄)이다. 아비지옥은 오역죄(五逆罪)라 불리는, 불교에서 제일 무겁게 여기는 죄를 지은 자가 태어나는 곳이다.

오역죄로 거론되는 항목은 첫째, 아버지를 죽인 죄, 둘째, 어머니를 죽인 죄, 세상의 존경을 받을 만한 성자(聖者)를 죽인 죄, 넷째, 깨달은 자(부처)의 몸을 상하게 하여 피를 흘리게 한 죄, 다섯째, 교단의 화합을 깬 죄이다.

대승불교 시대에는 이 다섯 가지 항목에 ‘대승을 비방한 죄’ 등이 첨가되는 등 시대에 따라 또는 교파에 따라 아비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업의 내용에 조금씩 차이가 생기게 된다.

‘지옥’이나 지옥의 관념이 거슬러 올라가면 불교 및 인도사상에서 유래한 말이라 하더라도, 한국 사람이 지금 가지고 있는 지옥 관념은 다양한 문화적 전통을 경유하며 새롭게 바꾼 것이기 때문에 순수한 불교적인 의미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중국의 지옥관

인도의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되면서 인도사상 및 불교의 지옥 관념도 중국 문화에 의해 변형된다. 중국적인 형태의 지옥 관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시왕신왕(十王信仰)이다.

시왕신앙은 중국의 도교적 민간신앙과 불교의 중유(中有 · 中陰:죽은 후 다시 태어나기까지의 시간) 사상이 뒤섞여 생긴 신앙 형태인데, 한국인의 지옥 관념에도 이러한 시왕신앙이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위경(僞經)인 『시왕경(十王經)』, 그리고 시왕경을 그림으로 나타낸 변상도(變相圖)는, 중국인이나 한국인이 생각했던 저승세계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시왕경에 의하면, 죽은 자가 새로 태어나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7 · 7일 곧 49일이다.

이 동안에 일주일에 한 왕씩 만나게 되어 일곱 왕에게 생전에 행한 업에 대해서 일일이 조사를 받게 된다. 변상도(變相圖)에 묘사된 정경을 살펴보자. 첫 주에는 저승의 다리를 건너 진광대왕(秦廣大王)을 만나게 된다. 둘째 주에는 저승의 강을 건너 초강대왕(初江大王) 앞에 끌려가 결박된 채 괴로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셋째 주에는 멀고 험한 저승의 행로가 나오며 송제대왕(宋帝大王)을 만나게 된다. 넷째 주에는 죽은 자가 칼을 쓰고서 오관대왕(五官大王) 앞에 끌려와 생전에 지은 죄업의 경중을 저울질하는 장면이 나온다. 다섯째 주에는 죽은 자가 염마대왕(閻魔大王) 앞에 끌려와 업경대(業鏡臺)에 생전의 일을 비추어 보는 장면이 나온다.

여섯째 주에는 죽은 자가 변성대왕(變成大王) 앞에 끌려와 문책당하는 장면이 나오고, 일곱째 주에는 태산대왕(太山大王) 앞에서 죽은 자의 중음신(中陰身)이 과보에 따라 다시 생을 받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한편 지옥 변상도의 여덟째 그림은 죽은 자가 100일을 지나 평등대왕(平等大王) 앞에서 형벌을 받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아홉 번째 그림은 죽은 자가 1년이 지나서 도시대왕(都市大王) 앞에서 고통 당하는 모습을 그린다.

마지막 열번째 그림에서는 죽은 자가 3년이 지나서 마지막 열번째 대왕인 오도전륜대왕(五道轉輪大王) 앞에 칼을 쓴 채 등장하고, 그 옆에는 육도환생(六道還生)의 모습이 묘사되어 지옥의 과보를 받은 이후에 또 다른 세계에 태어나는 정경을 그리고 있다. 시왕신앙은 지옥의 고통을 미리 알게함으로써 생전에 선행을 하도록 인도한다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의미를 지닌다.

중국 불교에서, 시왕경에 등장하는 열 명의 대왕을 차례대로 부동명왕 · 석가 · 문수보살 · 보현보살 · 지장보살 · 미륵보살 · 약사여래(藥師如來) · 관세음보살 · 세지보살(勢至菩薩) · 아미타여래의 화현(化現)으로 간주하는 점을 보면, 지옥에 대한 구체적 묘사는 중생구제를 위한 교훈의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지옥관

한국의 사찰에는 주불(主佛)을 모신 금당(金堂) 곁에 명부전(冥府殿)이란 곳이 있는데, 이 명부전에는 한국인의 민속신앙에 반영된 지옥관이 잘 나타나 있다. 명부전의 종교적 기능은 일반적으로 ‘49재’로 알려진, 죽은 이의 넋을 천도하기 위한 의식을 행하는 곳이다.

명부전은, 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서원(誓願)을 세우고, 자신의 성불을 뒤로 미룬 지장보살을 주존(主尊)으로 모시고, 그 좌우로 시왕과 그 권속이 배치되는데, 후불벽에는 지장도와 시왕도가 놓이는 것이 일반적인 배치 구조이다.

지옥이란 장소가 죄과에 대한 심판과 과보만 받는 무시무시하고 살벌한 곳만으로 간주되지 않는 것은 큰 자비심을 갖고 있는 지장보살이 나타나 구원해 주기 때문이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불이 열반에 든 후 미래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고통받는 중생을 제도하는 일을 물려받은 보살이다.

일반적으로 지장신앙이 널리 유포되기 시작한 것은 중국 수나라 때인데, 7세기 후반 당(唐)나라 때는 정토신앙과 더불어 지장신앙도 널리 퍼진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 신라 왕자였던 김교각(696∼794, 689∼789)은 지장보살의 현신(現身)으로 중국에서 추앙되기도 하였다.

명부전에는 지장보살을 주존으로 삼고, 양쪽 협시(脇侍)로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을 배치한 독특한 구도도 보이는데, 이것은 지장보살이 부처의 삼신(三身)처럼 여겨졌던 증거로, 한국에서만 보이는 특이한 신앙 형태이다.

도명존자에 관해서는 중국의 환혼기(還魂記)라는 설화에 그 기록이 보이는데, 염라대왕에게 끌려 갔다가 다시 돌아 왔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승려로, 도교에서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다. 무독귀왕은 지장보살의 전생이야기에 나오는데, 전생에 지장보살을 저승으로 안내해 준 귀왕이라고 한다.

명부전의 후불벽에 배치되는 지옥도는 『지장경(地藏經)』 · 『시왕경(十王經)』 · 『우란분경(盂蘭盆經)』과 같은 경전의 기술에서 내용을 빌려오고 있다. 『지장경』은 지장보살이 전생(前生)에서 세웠던 서원(誓願)과 그 위력, 한 구절 한 게송만 외우고 듣더라도 끝없는 죄업을 소멸할 수 있다는 경전 자체의 공덕에 대한 찬탄 등을 담고 있는 경전이다.

원래 명칭은 『지장보살본원경(地裝菩薩本願經)』인데, 당나라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명나라 대장경[明藏]에 와서야 처음으로 수록되기 때문에 당대 이후의 번역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학계에서는 중앙아시아 성립설과 중국인들이 『지장십륜경(地藏十輪經)』을 확대 보충해서 만든 위경(僞經)이라는 설도 있다.

『지장경』은 특히 조선 시대에 한국과 중국 등지에서 크게 유행했는데, 16세기 쯤에 처음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장경 구결(口訣)과 그 후대의 지장경 언해(諺解)는 『월인석보(月印釋譜)』와 함께 중세 국어연구에 좋은 자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당시 지장신앙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시왕경』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위경(僞經)으로 추정되며, 『예수시왕경(預修十王經)』 · 『예수시왕칠생경』 등의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우란분경』은 부처의 십대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목련존자의 인연설화에서 비롯된 경전으로, 목련존자가 육도 가운데 하나인 아귀도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효 사상과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널리 유포된 경전이다.

『우란분경』에 의거해서, 죽은 조상의 영혼을 위로하고 정토에 왕생토록 기리는 의식이 바로 우란분재이다. 한국에서는 오늘날까지 절에서 음력 7월15일을 우란분절 또는 백중(百中)이라 하여 크게 재를 올릴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민속명절로 기리고 있다. 고려시대에 우란분재를 자주 행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민속행사로까지 발전하였다.

한국인이 지옥을 어떤 곳으로 생각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자료는 그림일 것이다. 한국에서 지옥과 관련된 그림은 우란분경변상도(盂蘭盆經變相圖) · 감로왕도(甘露王圖) · 시왕도(十王圖) ·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 · 지장도(地藏圖) · 삼장도(三藏圖) · 인로왕도(引露王圖)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지옥의 정경을 직접적으로 그리고 있는 그림은 시왕도가 대표적이며 지장시왕도에도 부분적으로 지옥을 묘사한 경우가 있다. 우란분경변상도는 우란분경을 근거로 해서 그린 그림이다.

감로도(甘露圖)는 우란분경 및 『유가집요구아난타라니염구궤의경(瑜伽集要救阿難陀羅尼焰口軌儀經)』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그림이다. 감로도의 도설 내용은 아귀도를 떠도는 죽은 영혼에게 단이슬(甘露)로 상징되는 음식물을 베풀어서 배고픔과 목마름을 달래고 아미타불의 서방정토 극락에 왕생토록 인도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죽은 이의 넋을 천도하기 위해 재를 베푼 사람의 공덕을 그의 조상에게 회향한다는 조상 숭배적인 요소와 함께, 끝없는 윤회의 굴레를 헤매고 있는 여러 중생도 그러한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나 극락에 태어날 수 있다는 바람을 눈으로 보여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하겠다.

조선조의 억불정책 속에서도 유교의 효사상과 맞물려 왕실에서는 우란분재가 설치되었다. 우란분재의 의식은 각 사찰 영단에 감로왕도를 모셔 놓고 우란분재를 올리는 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우수한 감로왕도가 여럿 제작되었다. 정조 임금이 선친인 사도세자를 위해 세운 원찰(願刹)인 용주사에 있는 감로도는 정조의 효심이 어린 것으로 보인다.

한편 흥국사 감로도는, 임진왜란 당시 승군(僧軍)의 활약이 두드러진 사찰이기 때문에, 전란으로 인한 영혼 천도의 엄숙한 뜻이 담겨 있다고 보인다. 이러한 감로도는 한국에서만 널리 유행한 것으로 한국불화의 특색과 불교신앙의 성격을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한국 고전문학에 보이는 지옥관

고전문학 및 설화에 나타나는 지옥 또한 불교의 지옥관과는 다른 특성들을 살펴볼 수 있다. 즉 지옥에 떨어지는 이유를 ‘불교 계행을 범한 데 대한 과보’로 설명하는 교화의 틀을 벗어나, 유교와 같은 현세적 실천덕목의 완성이 지옥 설정의 중요한 이유가 되는 가치 다양화의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고대설화에 나타나는 지옥은 죽은 사람이나 산 사람이 지옥에 갔다 돌아 온다는 구조를 가진다. 이는 앞서 말했던 삶과 죽음 사이에 망각의 강과 같은 분할선이 엄격하게 존재하지 않는 생사불이의 내세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진다.

먼저 고대의 『삼국유사』에 나오는 「선율환생(善律還生)」의 이야기를 지옥왕래의 전범으로 삼을 수 있다. 선율이 육백반야경(六百般若經)을 조성하다가 명부로 잡혀가 염라왕의 심판을 받게 되는데, 그가 경전을 완성하지 못하고 온 것을 말하자 다시 인간세계로 환생케 하였다는 내용 자체가 불교의 가치를 숭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태종전」 · 「왕랑반혼전(王郞返魂傳)」 · 「삼사횡입황천기(三士橫入黃泉記)」등은 각각 당 태종 이세민(李世民)과 왕랑, 그리고 세 명의 선비가 겪는 지옥왕래 이야기를 소설로 구성한 것으로 세 편 모두 인간세계로 돌아 오는 줄거리이다.

또, 내용은 좀 다르지만 「제마무전(諸馬武傳)」은 중국의 제마무가 지부(地府)에 끌려 갔다가 나중에 염라왕이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대문학에서 우리나라 지옥관에 크게 영향을 준 것은 아마 『금오신화』에 나오는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일 것이다.

이 소설은 박생(朴生)이란 인물이 평소 유학의 도를 공부하면서 불교의 극락 · 지옥 설을 부인하다가 어느 날 꿈속에서 남염부주에 이르러 염라왕을 만나 문답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작품의 지옥관은 현실과 결부되어, 간흉한 무리의 부패상을 극복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비판정신과 정치 의지가 소설에 드러난 것으로, 작가(김시습) 당시의 현실관이기도 하다. 또 지옥에 대해 자세히 언급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지옥관 형성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앞서 말한 다섯 편의 고대소설은 대개가 불교적인 인과응보사상이나 윤회전생사상, 염불공덕을 통한 극락왕생사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고대소설의 전형적 구성방식(출생­결연­고행­출세­행복)을 벗어나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금오신화』에서 유불의 융합이 자연스럽게 나타났다면, 정도전『불씨잡변(佛氏雜辨)』중 「불씨지옥지변(佛氏地獄之辨)」에서는 불교의 지옥관이 철저하게 비판 부정된다.

그 반박근거로서 죽은 자는 형체가 썩어 없어지고 정신 또한 흩어져 버려 비록 꺾고 불에 태우고 절구통에 찧고 돌에 갈려고 해도 그렇게 할 것이 없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서 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기 전에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자들이 있었는데, 지옥에 잘못 떨어져서 이른바 시왕(十王)을 만나본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걸로 볼 때 지옥이란 것이 있지도 않고 믿을만한 것도 아님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또 불교의 지옥설은 모두 낮은 근기의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서 이러한 설을 만들어 사람들이 착한 일을 하도록 겁을 준 것이라는 데 대해서도, 거짓된 가르침을 만든다고 해서 사람들이 교화될 수 없다는 정자(程子)의 말을 인용했다.

그러면서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겁주는 것보다, 군자처럼 스스로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中)이 우러나오게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조선 후기 불교교단에서는 일반 신도를 교화하는 가사가 필요하였고, 「전설인과곡(奠說因果曲)」은 이런 동기에서 지어진 한글 가사이다.

「전설인과곡」은 1795년(정조19년)에 목판본으로 간행되었으며, 그보다 한 해 전에 지형(知瑩, 생몰미상)이라는 승려가 지었다 한다. 먼저 제목을 따로 붙이지 않은 서곡에서는 삼라만상 만물 중에 사람이 으뜸이라 하고서, 선행을 하면 천당에 가고 악행을 하면 지옥에 간다고 했다.

「지옥도송(地獄道頌)」에서는 지옥에 떨어질 악행을 열거하고, 지옥을 면하라고 권고했다. 그리고 「방생도송(傍生道頌)」 · 「아귀도송(餓鬼道頌)」 · 「인도송(人道頌)」 · 「천도송(天道頌)」으로써 어떤 종류의 악행을 하면 이런 윤회에 떨어지는지, 또 불법을 잘 닦으면 인간 천상에도 갈 수 있다고 한다.

「별창권락곡(別唱勸樂曲)」이라고 하는 부록을 두어 사람이 되기 어려우니 착한 일을 하라고 거듭 권유했다. 지은 바에 따라서 각기 다른 지옥에 떨어진다 하고 지옥의 형벌은 육체의 고통을 가하는 것으로 묘사했다.

방생도, 아귀도, 인도를 간략하게 다룬 다음, 천도에서는 현세의 복락에 만족하다가 천당을 버리고 지옥에 떨어지지 말라는 권고를 되풀이한다. 이 밖에 이 책의 대부분은 미혹된 중생을 깨우치려는 의도로 쓰여진 권선(勸善)의 가사로 이뤄져 있다.

한국 무속신앙에 나타난 지옥관

무속에 나타난 우주관에서 지옥은 천상, 지상, 지하 3계 중 사령(死靈)과 그 사령을 지배하는 명부신들이 산다고 보는 지하계에 있다. 이와 반대되는 낙원은 우주 3계 중에 어느 곳이라고 확실하게 지적되지 않은 채 그저 극락이나 저승으로 생각한다.

생전의 공과(功過)에 따라서 지옥과 낙원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인간의 정령(넋 · 혼백 · 혼 · 영)은 육신이 죽은 뒤에도 새로운 사람으로 또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거나 내세인 저승(本)으로 돌아가서 영생한다고 믿는 불멸의 존재이다.

무속에서는 불교 시왕신앙의 영향을 받아, 죽은 후 영혼이 시왕을 차례로 거치며 생전의 선악심판을 받게 되고, 악한 일을 한 사람의 영혼은 지옥으로 보내져 영원히 온갖 형벌을 받는다고 믿는다. 원래의 무속에서는 저승이란 이승의 관계를 일체 끊고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는 곳이라고 믿는 이상향 · 본원(本原)이다.

그래서 원형태는 순환적인 내세관, 즉 죽으면 다시 근원지인 저승으로 돌아간다고 본 것으로, 지옥이란 개념이 명확하게 존재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무속의 바리공주 설화도 인도 신화에 나오는 염마(Yama)처럼 죽어서 사후세계를 관장하는 신이 되었다는 흥미로운 공통점을 갖기도 한다.

무속과 불교의 지옥이 다수의 공통점을 갖기도 하지만, 불교가 자력적인 구조를 원칙으로 한다면, 무속에서는 저승으로 가지 못하는 존재를 초인간적인 힘(굿)을 빌어 편안하게 가도록 천도해 주거나 그를 통해 현실에 있는 사람에게도 그 복이 미치길 기원한다는 타력적인 구조가 먼저 상정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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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이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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