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주사 감로왕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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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작품
경기도 화성시 용주로(송산동) 용주사에 있는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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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기도 화성시 용주로(송산동) 용주사에 있는 불화.
내용

1790년(영조 15) 작.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56㎝, 가로 313㎝. 이 불화는 우란분경(盂蘭盆經)의 내용을 도상화한 그림으로서 당시의 생활상 및 풍속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되는 작품이다.

그림의 내용은 크게 3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상단에는 중앙에 7여래입상을 일렬로 배열하고 오른쪽[向左]에는 인로왕보살(引路王普薩)과 천녀(天女)·수레(중생들을 극락으로 데려가기 위한 수레) 등이 묘사되었다.

여기에서 7여래는 고혼(孤魂)을 극락왕생케 하는 부처님이다. 그리고 인로왕보살은 특히 죽은 이의 영혼을 명부(冥府)로 인도하거나 또는 극락정토로 인도해 가는 안내자이다. 바로 그림 아랫부분에 묘사된 지옥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또 왼쪽[向右]에는 지장보살과 관음보살(백의관음), 천녀, 수레 등이 그려졌다. 이들은 아미타여래의 협시로서 역시 중생을 극락으로 데려가기 위해 내영한 것이다.

중앙에 있는 성반(盛飯: 잘 차린 음식)의 모습은 비교적 간단히 처리하여 16세기 말의 작품인 1589년(선조 22) 감로왕도에서 성대하게 성반을 묘사한 것과 좋은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도상이 간략화되고 경전의 해석 및 신앙의 변모에 따른 것으로 생각된다.

이 그림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화면 아래 그려진 지옥 및 현세의 생활상이다. 즉, 오른쪽에는 지옥문을 나오는 지옥 중생들, 가운데에는 백중날의 백성들의 모습 그리고 왼쪽에는 국왕과 대신의 행렬, 싸움터의 모습 등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이중 한복을 입고 갓을 쓴 선비 및 머리를 틀어 올린 아낙네의 모습, 줄을 타는 광대의 모습 등은 당시의 풍속과 민간의 생활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곧 우란분재 의식이 일반 백성 사이에서 널리 유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 준다. 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에 이르러 불타의 도상이 한국적인 것으로 정착된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그림 좌우에 사실적으로 그린 나무와 바위의 모습이다. 그 수법은 흡사 조선 후기의 회화를 보는 듯하다. 특히 왼쪽[向右] 소나무와 아래의 바위는 김홍도의 <무이귀도도 武夷歸棹圖>에서 보이는 수법과 비슷하여 불화와 일반 회화와의 연관성을 생각게 한다.

또한 다소 경직되고 딱딱해진 필치라든가 형식화된 인물의 형태, 짙어진 색채 사용 등에서 18세기 말에서 19세기로 넘어가는 불화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 불화는 한국 재래의 강한 조상 숭배 신앙과 결합되어 널리 유행한 ≪우란분경≫의 내용을 도상화한 그림이다. 그 당시의 정신과 풍속을 잘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자못 크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한국의 미 16-조선불화-』(문명대 감수, 중앙일보사, 1984)
『한국불화의 연구』(홍윤식, 원광대학교출판국, 1980)
집필자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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