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준재(俊在), 호는 죽계(竹溪). 아버지는 송태수(宋台壽)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로 충의위(忠義衛) 이인록(李麟祿)의 딸이다. 유년시절에 홍남립(洪南立)에게서 수학하였으며, 평생 동안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여 고을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소학』을 수양하는 가르침으로 여기고 일생 손에서 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필요한 부분을 번역하여 집안의 부녀자들에게도 널리 익히게 하였다. 1665년(현종 6) 겨울에는 병자호란으로 인하여 소실된 강화도 소장본 실록의 낙질분(落帙分)을 보등(補謄)하는 일에 지방의 학자로서 참여하였다.
한편, 효성도 지극하여 1797년(정조 21)에 국가로부터 정려가 내려졌으며, 아우 송정구(宋廷耉)·송정모(宋廷模)와 함께 삼효자로 소문이 나 모두 육송사(六松祠), 호남의 학천사(鶴川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죽계집(竹溪集)』 2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