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찬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경기감사, 영흥부사, 판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치숙(治叔)
서교(西郊)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10년(중종 5)
사망 연도
1601년(선조 34)
본관
진천(鎭川)
주요 관직
경기감사|영흥부사|판돈녕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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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경기감사, 영흥부사, 판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진천(鎭川). 자는 치숙(治叔), 호는 서교(西郊). 송취(宋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송선효(宋善孝)이고, 아버지는 사지(司紙) 송세증(宋世曾)이며, 어머니는 민휘(閔徽)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37년(중종 32) 생원시에 합격하고, 1540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43년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홍문관정자(弘文館正字)를 거쳐 승문원참교(承文院參校)로 『중종실록(中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1545년(명종 즉위년)에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다음 해 시독관·교리(校理)·헌납(獻納) 등을 지내고, 다시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병조정랑·홍문관부교리·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홍문관응교(弘文館應敎)를 거쳐, 1551년 검상(檢祥)·사인(舍人)·전라도구황어사(全羅道救荒御史) 등을 역임하였다.

다음 해 전한(典翰)·직제학·승지를 지낸 뒤 1557년 대사간이 되었다. 1561년 필선(弼善)을 거쳐, 우승지·한성부우윤·도승지·형조참판 등을 역임하고, 1567년 진위사(陳慰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70년(선조 3) 호조참판으로 『명종실록(明宗實錄)』의 편찬에 관여하였고, 경상감사가 되었다.

1573년 영흥부사를 지냈고, 이 해 진하사(進賀使)로 또 명나라에 다녀왔다. 1594년 첨지중추부사·우참찬을 거쳐, 판돈녕부사·판중추부사 등의 직에 올랐다. 중종·인종·명종·선조의 4조에 걸친 중신으로 장수하였다.

참고문헌

『중종실록(中宗實錄)』
『명종실록(明宗實錄)』
『선조실록(宣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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