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원론적으로 변론가를 뜻하는 그리스어 ‘rhetor’에서 비롯된 수사라는 단어는 역사적으로 문학·철학·역사·법학·정치학 등의 여러 분야에 걸쳐 두루 관련되어 있다.
‘청중이 논의의 중점을 받아들이게 하는 지적·정서적 영향’을 전제로 삼는 변론술로서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정의 이래 고전 수사학자들을 거쳐 현대 언어학과 중복되는 범주와 규칙을 가지는 지식으로 발전되었다.
중세에 들어서면서 수사법은 문법·논리학과 함께 교육과정에서의 필수교과과목이 될 정도로 중시되었다. 이 수사법에서의 전달의 실용성은 시학(詩學) 내지 시의 어법(語法, diction)에서 독자나 청중에게 특정한 영향을 행사하기 위한 예술적 수단으로 이어졌다.
근대에 들어와 낭만주의시대 등을 거치면서 수식적 요구의 규범적이고 미학적인 개념은 퇴화하였으나, 언어표현을 실현하고 측정하는 실용적 장치로서 존립해 왔다.
수사법은 크게 비유법과 강조법으로 이분된다. 비유법은 일상적으로 관련시킬 수 없는 두 사물을 비교하거나 동일시함으로써 특수한 의미나 효과를 성취하는 수사법이다.
비유법에는 직유법(直喩法)·은유법(隱喩法)·대유법(代喩法)·제유법(提喩法)·환유법(換喩法)·의인법(擬人法)·활유법(活喩法)·풍유법(諷喩法)·의성법(擬聲法)·의태법(擬態法) 등이 있다.
직유법(simile)은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때’,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 ‘피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과 같이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표면적인 유사성을 토대로 비교하여 내용을 부각시키는 방법이다.
은유법(metaphor)은 ‘내 마음은 호수’나 ‘여자의 마음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에서와 같이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관계를 직접 드러내지 않고 암시하는 방법으로 한 사물의 의미를 다른 것으로 전이시킴으로써 양자의 비상사성(非相似性) 가운데서 새로운 유사성을 발견해 내는 방법이다.
대유법에는 환유법(metonymy)과 제유법(synecdoche)을 하위범주로 둔다. 대유법으로 환유법을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 제유법은 부분으로 전체를 의미하거나 전체로 부분을 의미하는 표현형식이다.
‘칼보다 펜이 강하다.’, ‘빵이 아니면 죽음을!’에서의 ‘칼·펜·빵’은 각기 ‘무력·글·식량’ 등을 대표한다.
환유법은 나타내려는 관념이나 사물을 공간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인접한 다른 관념이나 사물을 지칭하는 낱말로써 대신하는 표현법이다. 간호원을 뜻하는 ‘백의의 천사’라든가 용기에 담긴 내용물인 술을 의미하는 ‘대포’가 그 예이다.
의인법(personification)도 활유법이라고 할 수 있으나 대체적으로 생물·무생물을 사람으로 인격화하는 것을 의인법, 무생물을 사람이 아닌 동물로 생명화시킨 것을 활유법이라고 한다. “산은 말하고 있었다.
” 나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가 의인법이라면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 는 활유법이다. 한국고전문학에서는 가전체류(假傳體類)나 <장끼전>·<토끼전> 등의 고전소설 등에서 사용되었던 수사법이기도 하다.
풍유법(allegory)은 우의법이라고도 하며, 위트와 유머가 유발하는 흥미를 바탕으로 원관념을 숨기고 보조관념만으로 숨겨진 본래의 의미를 암시하는 방법이다. 흔히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나 ‘벼이삭도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와 같은 격언이나 속담에서 구사되는 표현법이며, <토끼전>이나 <이솝우화>에서와 같이 한 작품 전체를 일관하는 기법으로 쓰이기도 한다.
강조법에는 과장법(誇張法)·대조법(對照法)·반복법(反復法)·점층법(漸層法)·열거법(列擧法)·영탄법(咏嘆法)·비교법(比較法)·도치법(倒置法)·대구법(對句法)·문답법(問答法)·반어법(反語法)·역설법(逆說法)·돈호법(頓呼法) 등이 있다. 강조법은 내용을 생생하고 두드러지게 하거나 평이함과 단조로움을 피하도록 변화를 주는 수사법이다.
과장법(hyperbole)은 사물을 실제보다 훨씬 크게 늘리거나 혹은 작게 줄여서 표현하는 방법이다.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이나 ‘눈물이 홍수’와 같은 관습적 표현에서 ‘내 손바닥에 고인 바다’의 새로운 표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과소진술을 격하(格下, understatement)로 달리 지칭하기도 하며, 이때 곡언법(曲言法, litotes)을 이의 하위범주에 두기도 한다.
대조법(antithesis)은 사물의 종류나 정도를 대조시켜 의미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표현법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나 ‘얼음과 불꽃 사이/영원과 깜짝할 사이’가 그 예이다.
반복법(repetition)은 “산에는 꽃 피네/꽃이 피네.”나 “해야 솟아라/해야 솟아라/맑은 해 고운 해야 솟아라.”와 같이 같은 말을 반복하여 뜻을 강조하고, 나아가 시어에서는 운율을 맞추게도 하는 방법이다.
그 밖에도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영탄법,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의 도치법,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의 열거법 등이 있다.
반어법(irony)은 표면적인 말의 뜻과 반대되는 뜻으로 진술하는 표현법이다. 표리부동한 행위나 어법으로 내용을 은폐하였다가 노출시킴으로써 의미를 강조하게 된다. ‘절망 때문에 결혼을 하여/그 절망을 두배로 만들고/허무 때문에 자식을 낳아 그 허무를 두배로 만들었으니’나 모처럼 돈을 많이 벌게 된 날 앓던 아내가 죽고 만다는 가난한 인력거꾼의 하루가 ‘운수 좋은 날’인 것이 반어법이다.
이에 대해 외면상으로는 모순되고 불합리한 진술이 진리를 내포하는 표현법이 역설법(paradox)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나 “튼튼한 담장이 착한 이웃을 만든다네.”가 그 예이다.
이를 악의(惡意)의 반어라고 지칭하기도 하며, 특히 일상어로는 모순되는 두 낱말을 결합시키는 ‘쾌락의 고통’이나 ‘사랑의 증오’와 같은 것을 모순어법(矛盾語法, oxymoron)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또, 진술하는 도중에 인식의 대상인 사람이나 사물을 불러 독자나 청자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돈호법(apostrophe)이 있다. 목사가 설교 도중에 ‘하느님!’이나 ‘주여! ’를 호칭하고 이인칭 대화로 접어드는 경우가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근래에 와서 신비평·구조주의·기호학의 지평에서 고전적 수사학의 가치가 재발견되기에 이르렀고, 따라서 현재의 수사학 체계는 포괄적 의미의 언어학을 기반으로 재정비될 전망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