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의 어원은 일제강점기, 독립군들이 나무껍질을 벗겨내어 조국광복의 염원과 항일 투쟁의 구호를 새겨놓았던 나무이다. 그러나 1986년 김일성의 지시에 의하여 김일성 유격대가 새겨놓은 백두산 밀영지역의 구호나무 발굴 작업이 시작되면서 북한 체제 선전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구호나무 찾기 사업은 1986년김일성의 백두산지구 순방 중 백두산 밀영에 있는 구호나무를 찾으라는 지시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북한은 백두산밀영을 중심으로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초반의 구호나무 200여 그루가 발견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후 1년 사이에 구호나무는 백두산지구를 비롯한 북부국경지대와 만경대, 룡악산, 대성산, 룡골산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고, 김정일은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항일혁명투사들이 지녔던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적극적으로 따라배우자’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구호나무들에 새겨진 구호들이 항일혁명투사들의 수령에 대한 충실성과 혁명에 대한 무한한 헌신성, 필승의 신념, 혁명적 낙관주의를 보여주는 역사적 자료이며, 당과 혁명의 귀중한 재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구호문헌 가운데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 것은 특별히 ‘충성구호’로 불리고 있다. 대표적인 충성구호로는 ‘김일성장군은 민족의 태양이시다’, ‘2천만동포여 우리나라 독립하면 김일성장군을 민족의 최고령수로 모시자’ 등이 있다.
북한은 구호나무와 구호문헌을 전체 주민들에 대한 사상교양 자료로 적극 이용하고 있다. 1986년에 간행된 『김일성 저작집』에 구호나무는 항일투쟁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1987년 이후 『김정일 선집』에는 수령에 대한 유격대원의 충성심을 배우자는 내용으로 변화되었다. 고난의 행군 이후에는 구호나무를 훼손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구호나무에 보호대를 설치하는 작업이 시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