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1년(충렬왕 17) 당시 수원의 읍 중심이었던 화성시 봉담읍 와우리 화산 앞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고, 그 후 1789년(정조 13) 현재의 위치에 이전하여 건축하였다. 처음 이전 당시에는 급히 서두른 탓으로 목재 대부분은 구건물의 것을 재활용하였으며 건물의 하부가 물에 잠기어 목재가 썩는 등 문제가 발생하여 1795년(정조 19) 재건축하게 되었다. 1959년에 대성전과 명륜당을 보수하고 1978년에 대성전과 외삼문(外三門)을 보수하였으며, 이듬해에 사무실과 수복청(守僕廳)을 신축하였다. 1980년에는 담장을 쌓고 1983년에 유림회관을 증축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 명륜당 · 동무(東廡) · 서무(西廡) · 내삼문(內三門) · 외삼문 · 수복청 · 유림회관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건축형태는 앞에 교육 공간인 명륜당을 두고 뒤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을 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이다. 명륜당은 앞면 5칸 · 옆면 2칸 규모이고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대성전은 앞면 5칸 · 옆면 3칸 규모의 익공계 건물로, 맞배지붕집이며 1고주(高柱) 7량(樑)의 구조이다. 또한 대성전은 제사 의례에 적합하도록 앞면에 개방된 마루를 두었다. 동무와 서무는 앞면 3칸 · 옆면 2칸 규모로 홑처마의 굴도리집이고, 내삼문 · 외삼문은 솟을대문 형식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향교는 1983년 경기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매년 여름방학 때에는 지방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충효교육을 실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