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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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사
제도
고려시대 예문관 · 춘추관의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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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 예문관 · 춘추관의 관직.
내용

1308년(충선왕 즉위년) 문한서(文翰署 : 예문관·한림원)와 사관(史館 : 춘추관)을 병합하여 예문춘추관으로 개칭할 때 정7품의 수찬 2인을 두었다.

1325년(충숙왕 12) 예문춘추관이 다시 예문관과 춘추관으로 분립하면서 각각 1인씩을 두었으며, 품질(品秩)은 정8품으로 낮아졌다. 1389년(공양왕 1) 다시 예문춘추관으로 병합되어 여기에 배속되었다. 사관(史官)으로서 사명(詞命)의 제찬(制撰)과 시정(時政)의 기록을 담당하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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