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는 궁궐·능(陵)을 조성하거나 나라의 어떤 특별한 업무 또는 행사가 있을 때는 그 일을 주관하는 임시관청으로 도감(都監)을 설치하였는데, 대개 그 책임은 정2품 이상의 고위 관료가 맡았다.
수창궁을 다시 지을 때에는 문하시중 최영(崔瑩),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 이성림(李成林) 등 정승급의 고관들이 도감의 책임자인 판사에 임명되었다. 도감은 일이 끝나면 폐지되는 것이 상례이므로 이 도감도 1384년에 궁궐이 준공되면서 폐지되었다.
수창궁은 원래 고려 초기인 성종·목종 때에 별궁(別宮)으로 창건되었으며, 정궁(正宮)이 불타 없어진 현종 때에는 왕이 이곳에 머무르기도 하였다. 몽고의 침입 때 소실되었다가 공민왕이 즉위하고 나서 옛터에 다시 지었던 것을 1381년(우왕 7)에 또다시 지은 것이다.
이 궁에서 조선왕조의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즉위하였으며, 정종과 태종도 이곳에 머무른 적이 있다. 그 뒤로는 의창(義倉)으로 사용되었다.
수창궁이 있던 위치는 고려 궁성의 서소문 안이었다고 전하며, 당시에는 만월대(滿月臺) 정궁에 다음가는 대궁(大宮)이었다고 한다. 궁내에는 관인전(寬仁殿)·화평전(和平殿)·만수정(萬壽亭) 등 많은 건물이 있었고 궁 서쪽에 큰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이 도감이 설치된 이후로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는 특히 도성(都城)이나 궁궐의 조성도감이 자주 설치되었으니, 숙녕궁조성도감(肅寧宮造成都監, 1387)·연복사조성도감(演福寺造成都監, 1390)·경성수축도감(京城修築都監, 1393)·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 1394)·도성조축도감(都城造築都監, 1395) 등으로, 이 도감은 이후 일련의 조성도감 설치의 시작이 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