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불상 높이 76㎝, 광배(光背) 높이 130㎝. 승가굴은 삼국시대부터 불승들이 수도하던 석굴로서 이 석굴 안에 석상(石像) 1구가 봉안되어 있다. 「승가사중수기(僧伽寺重修記)」에 따르면 승가대사(僧伽大師)의 상으로 추정된다. 인도의 고승으로 당나라에 와서 전도에 전념하여 관음보살의 화신(化身)으로까지 추앙받았던 승가대사를 돌로 형상화하여 석굴에 봉안, 신앙하였던 것이다.
화려한 광배를 등에 진 이 상은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등신대(等身大)의 좌상이다.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는 얼굴은 넓적하면서도 광대뼈가 튀어나와 전형적인 시골 할머니 같은 인상으로 지방화가 짙게 보인다. 상체도 사각형에 가깝고 평판적이며 상체에 비해서 하체의 무릎이 유난히 넓어 고려 초기의 철불(鐵佛)들과 유사한 형식을 보여준다.
오른손은 가슴 앞에서 손바닥을 안으로 하여 지물(持物)을 쥔 모양이고, 왼손은 소맷자락 속에 감추고 있다. 통견의 가사(袈裟) 옷주름 선은 굵으면서 간결한 것으로, 당시의 불의(佛衣)의 옷주름 선과 비슷한 경향을 나타낸다.
광배는 상에 비해서 훨씬 거대한 주형 거신광배(舟形擧身光背)로서, 중간 아래는 원형을 형성하여 신라시대의 주형거신광배와는 다소 다르다. 머리 뒤의 두광(頭光)에는 연화문(蓮華文)을 두르고 이 주위를 당초문과 모란문(牧丹文)을 새겼으며, 신광에도 당초·보상화문을 화려하게 표현하였다. 거신광(擧身光)의 테두리[外緣]에는 전체적으로 불꽃무늬를 새겨 신라의 광배와 비슷하다. 하지만 비교적 정교하고 화려한 무늬의 조각 수법은 고려 특유의 궁정 취향을 잘 나타내고 있어서 당대의 우수한 작품임을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