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을 뽑던 제도이다. 1147년(의종 1)임유공(任裕公) 등 55인을 시취(試取)함으로써 시작되었으며, 그 뒤 고려 말까지 246년 동안 33회를 실시, 1,554명의 생원합격자를 내었다. 시험과목은 진사시(進士試)와 같이 시부(詩賦)나 경의(經義)로 하였다.
이 승보시는 생원으로 하여금 국자감에 나아가게 하였던 것으로, 국자감의 연구생채용시험 성격을 띤 일종의 예비고시기능을 가졌다.
한편, 승보시는 국학 또는 국자감으로 불리는 최고교육기관 안에서 상사(上舍 : 국자감 교육과정의 최고위과정)에 진급하는 입재고시(入齋考試)로서, 승보시가 국학의 학생인 재생(齋生)을 뽑던 고시였던 것이 뒤에 재생을 생원이라 불러 생원시라 하였다는 견해도 있다. 생원시는 1388년(우왕 14) 이후 진사시보다 강화되는 추세를 보였다. →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