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호리철교는 평양 동쪽 10㎞ 지점의 대동강지류에 설치된 것으로 전쟁기간 중 북한공산군이 중동부전선으로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데 요충지가 되고 있었다.
따라서 당연히 유엔공군의 항공목표가 되었으며 이를 폭파하려고 500회 이상 출격했으나 위장은폐로 성공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이 작전수행임무가 한국공군에 넘겨졌으며 당시 한국공군으로서는 이 철교를 파괴할만한 전투역량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손으로 폭파시키겠다는 신념에서 작전수행에 나서게 되었다.
1952년 1월 12일김두만(金斗萬)소령을 편대장으로 한 F-51전폭기 5대가 첫 출격을 하고 같은날 오후윤응렬(尹應烈)대위가 이끄는 3대가 출격하였다. 그러나 두번의 출격에서 모두 폭탄을 투하했으나 실패하였다.
작전책임자인 제1전투비행단의 김신(金信)대령은 이 실패가 미공군 전술교리에 따른 고공투하 때문이라고 결론짓고 초저공침투공격법을 쓰기로 방침을 세웠다. 이 방침에 따라 1월 15일 2개 편대 6대의 전폭기가 출격하여 철교중앙의 경간(徑間) 2개를 폭파시킴으로써 작전을 성공시켰다.
이 출격에는 제1편대장 옥만호(玉滿鎬)대위, 2번기 유치곤(劉致坤)대위, 3번기 박재호(朴在浩)대위 그리고 제2편대장 윤응렬대위, 2번기 정주량(鄭周良)대위, 3번기 장성태(張星太)대위가 참가하였으며 이로써 한국공군의 독자적인 작전능력을 과시하게 되었다. 또한 이 철교의 폭파로 북한공산군은 보급로가 차단되어 물자수송에 막대한 지장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