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10월 육군으로부터 분리, 독립된 공군은 공군력의 절대적인 요소인 전투기 확보가 절실해지자 미국 정부에 전투기 원조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미국 정부에서는 한국이 과도한 군비(軍費)로 경제적인 부담을 져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거절하였다.
미국측의 이런 냉담한 반응에 따라 한국 정부는 항공기를 자력으로 구입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1949년 9월 범국민적인 애국기헌납운동을 선언하고 모금운동을 전개한 결과, 총 3억 5000만 원의 성금을 모았다.
한국 정부는 이 성금으로 항공기를 구매하기 위해 미국과 항공기 구입 교섭을 추진하였으나 미국은 항공기에 대한 대한판매정책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그러자 캐나다에서 생산한 AT-6 고등연습기 10대를 구입하기로 결정하였다.
1950년 5월 국민의 성금으로 구입한 AT-6기에 대한 명명식이 대통령 이승만(李承晩)과 국내외 귀빈, 그리고 학생과 시민 다수가 참석한 가운데 여의도 기지에서 성대히 거행되었다.
이 날 서울 상공을 편대 비행하는 AT-6기를 본 이승만은 “이 비행기 10대는 전국의 동포가 자기 주머니를 털어서 산 것이므로, 각 도를 대표해서 이름을 지어 비행기를 사는 데 희생적인 공헌을 한 사람들의 정신과 애국심을 표시하게 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가 건설과 국민의 애국심을 상징하는 ‘건국기’라고 총칭하고, 각 비행기는 다음과 같이 명명하였다.
건국기 제1호(교통 제1호), 건국기 제2호(전남학도 제1호), 건국기 제3호(전북학도 제1호), 건국기 제4호(전매 제1호), 건국기 제5호(충남 제1호), 건국기 제6호(체신 제1호), 건국 제7호(국민 제1호), 건국기 제8호(농민 제1호), 건국기 제9호(남전 제1호), 건국기 제10호(경북 제1호).
이와 같이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구입한 AT-6 건국기는 1950년 7월에 F-51 전투기가 한국 공군에 도입되기까지 전투기 겸 조종사 훈련기로 사용되었으며, 1962년 12월에 퇴역할 때까지 588명의 조종사를 양성한 항공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