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영동 출생. 북경대학(北京大學)을 2년 수료하였다. 한때 화풍광산(和豊鑛山) 소장을 지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선거 때 고향인 옥천에서 야당인 민주국민당(民主國民黨)으로 출마, 당선된 데 이어 1954년 제3대 의원, 1960년 제5대 의원을 지냈다.
민주당(民主黨) 창당과 함께 노농부장(勞農部長)·충청북도당위원장 등의 책임을 맡았다. 일찍부터 그는 농림정책에 일가견을 이루고 야당의 농림관계 원내대책을 도맡아 추진하였다.
자유당 말 제3대 국회 때는 농림부 간부들을 국회농림위원회에 불러 공격할 때는 빈틈이 없었다. 최인규(崔仁圭)가 외자청장으로 있을 때 국회에 출석하여 발언하는 도중,신랄한 추궁에 말문이 막혀 눈물을 흘린 일도 있다.
5·16 군사정변 이후에는 윤보선(尹潽善)·김도연(金度演) 등과 함께 신한당(新韓黨) 창당에 참여하였으나 원내로 진출하지는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