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계관

  • 역사
  • 인물
  • 대한제국기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때, 대한독립단, 광복군사령부 등에서 활동하며 군자금 모금과 친일파 처단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칭
  • 이칭신광우(申光祐), 신광조(申光祚)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21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98년(고종 35)
  • 출생지황해도 신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상태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대한독립단, 광복군사령부 등에서 활동하며 군자금 모금과 친일파 처단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개설

일명 신광조(申光祚)·신광우(申光祐). 황해도 신천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3·1운동 후 만주로 망명하여 관전현(寬甸縣)에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담하여 국내특파원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임시정부 직속 광복군사령부 제2영 7대장으로 활동중 광복군사령부의 특명에 의하여 김창곤(金昌坤)·한철수(韓哲洙) 등과 국내에 잠입하여 황해도·평안도 지방에서 활약하였다.

1921년 4월에는 의주에서 왜적과 교전하여 일본헌병 2명을 사살하고, 6월에는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금하던 중 일제의 앞잡이인 전 면장 윤씨를 살해하였다.

그 해 가을에는 장필석(張弼碩)·이관인(李寬仁) 등과 같이 평안남도 지방에 출동하여 동지를 규합하고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1921년에는 독립단 단장이 되어 부단장 박경만(朴京萬)과 그의 부인 김간란(金干蘭) 등과 같이 황해도 서흥·신계지방에서 활동중, 고면(古面) 무고리(武庫里)에서 일본경찰의 습격을 받고 일본경찰 이희춘(李熙春) 등을 사살하였으나, 교전중 총상을 입고 마지막 남은 총알로 자결,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8년 대통령 표창, 1977년에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독립유공자공훈록』 4(국가보훈처, 1987)

  • - 『독립운동사』 5·7(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 - 『항일순국의열사전』(오재식, 행정신문사, 1959)

  • - 『동아일보(東亞日報)』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