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2책. 목활자본. 조선 후기의 학자 박세욱(朴世旭)이 1760년(영조 36)에 편집, 1768년에 박주구(朴周龜) 등이 간행하였다. 책머리에 박치화(朴致和)의 서문과 박성구(朴成矩)·박세욱의 발문이 있고, 제2권 머리에 소원록(溯源錄) 간판서(刊板序)가 있다.
책머리에 능전도(陵殿圖)가 있고 서문과 권후발이 있으며, 신라연보(新羅年譜)·오릉변론(五陵辨論)·금척론(金尺論)·시조왕기(始祖王記)·팔대군분봉(八大君分封)·입비상서(立碑上書)·개왕자상서(改王字上書)·청비문장(請碑文狀)·시조왕릉비명(始祖王陵碑銘)·참봉보장(參奉報狀)·팔대군분파록(八大君分派錄)·대제축문식(大祭祝文式)·본전절목(本殿節目)·입비사실(立碑事實)·영이사적(靈異事蹟)·상언명첩(上言名帖)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하에는, 간판서·참봉상언(參奉上言)·비음기(碑陰記)·비각기(碑閣記)·개왕호축문(改王號祝文)·나정비문(蘿井碑文)·충렬공사적도(忠烈公事蹟圖)·신모사기(神母祠記)·옥적기적(玉笛記蹟)·월성기(月城記)·선도산기(仙桃山記)·능수벌극기(陵藪伐棘記)·남암고적(南庵古蹟)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신라연보>는 서기전 57년 시조왕 1년부터 935년 경순왕의 말년까지의 역대 기사를 ≪삼국승람 三國勝覽≫·≪동경기 東京記≫·≪양촌집 陽村集≫ 등의 기록에 근거하여 편년체로 기록하고 있다. <오릉변>에는 시조왕이 죽은 지 7일만에 5체(五體)가 흩어져 있어 장사를 지내려고 하니 뱀이 방해하여 다섯 곳으로 나누어 장사를 지냈기 때문에 오릉(五陵) 또는 사릉(蛇陵)이라고 한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또, 일설에는 남해·유리·파사 세 왕을 차례로 장사지내고 여러 신하들을 순장했기 때문에 오릉이라고도 하며, 또한 왕이 죽은 지 7일만에 왕비가 죽어 뱀의 방해로 왕과 왕비를 각장하고 세 왕을 차례로 장사지냈다는 설도 소개하고 있다.
<충렬공사적도>에는 충렬공 박제상(朴堤上)이 삽량주간(歃良州干)으로 있을 당시 실성왕이 내물왕의 아들 미사흔(未斯欣)은 왜국으로, 형 복호(卜好)는 고구려로 각각 볼모로 보냈는데 그가 자청하여 고구려에 가서 복호를 데려오고 뒤이어 왜국에 가서 미사흔을 탈출하게 하고 일본에 체류했다가 그 일이 발각되어 모진 형벌을 받고 나무궤 속에서 불에 타 죽었다는 기록과 함께 <충렬공잠환미사흔도 忠烈公潛還未斯欣圖>, 그리고 그의 부인이 기다리다 지쳐 망부석이 되었다는 치술령(鵄述嶺)의 <산천도 山川圖>가 실려 있다.
그 밖에 목차에서 보이듯이 박씨의 내력을 살필 수 있는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