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29년 검열로 다시 등용되어 헌납·지평·정언·이조참의·대사성·부제학·도승지·이조참판 등을 거쳐 1741년 개성유수, 1743년 경기관찰사, 1747년 예조판서, 1748년 이조판서, 1753년 호조판서·병조판서를 지냈다.
1755년 찬수당상(纂修堂上)으로 『천의소감(闡義昭鑑)』을 편찬하였다. 1756년 우의정, 1758년 좌의정을 거쳐 1762년에 영의정에 이르렀다. 이해 사도세자(思悼世子)가 뒤주에 갇히는 현장에서 방관하였다는 이유로, 세자를 죽인 것을 후회한 왕에 의하여 파직되었다.
뒤에 영의정에 복직되었다. 동생 신회(申晦)와 함께 형제가 정승직에 오른 흔하지 않은 경우의 인물이다. 그러나 재직시 송명흠(宋明欽)을 정중히 대접할 것을 청한 외에는 별다른 건의사항이 없었다. 시호는 효정(孝正)이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청선고(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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