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시주(時周), 호는 하관(遐觀). 개성도사(開城都事) 신승서(申承緖)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영의정 신흠(申欽)이고, 아버지는 신익성(申翊聖)이며, 어머니는 선조의 딸인 정숙옹주(貞淑翁主)이다.
1624년(인조 2) 생원이 되고, 1637년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 검열·이조좌랑을 거쳐 1649년 예조참의를 지냈다. 이해 효종 즉위 직후 송준길(宋浚吉)의 탄핵을 받고 아산에 유배되었으나, 이듬해 풀려나와 동부승지에 등용되었다.
이어 부제학·대사간을 역임하다가 1651년(효종 2) 김자점(金自點)의 옥사에 그 일당으로 지목되어 국문 도중 장형을 받다가 쓰러져 죽었다. 『효종실록(孝宗實錄)』에는 음독자결한 것 같은 의혹이 있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