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벌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전기에, 안산군수, 여산군수, 단양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제백(濟伯)
인물/전통 인물
  • 본관고령(高靈)
  • 사망 연도1616년(광해군 8)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안산군수|여산군수|단양군수
  • 출생 연도1523년(중종 18)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문기 (경산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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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안산군수, 여산군수, 단양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제백(濟伯). 신숙주(申叔舟)의 현손이며, 좌의정 신용개(申用漑)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판결사 신한(申瀚)이고, 아버지는 가평군수 신여주(申汝柱)이며, 어머니는 우의정 이명구(李明龜)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52년 (명종 7)에 효자로 천거받아 사재감참봉(司宰監參奉)이 되었고, 그 뒤 광흥창봉사(廣興倉奉事)·장악원직장(掌樂院直長)·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 등을 지내고 직산현감·개성부도사·안산군수·여산군수·단양군수 등의 외직을 거쳤다.

이 후 1594년(선조 27)에 세자익위사사어(世子翊衛司司禦)와 선공감판관(繕工監判官)이 되었다가 병으로 사직하고 향리에 돌아갔다.

80세 때 비로소 국가의 전례(典禮)에 의해 당상관의 품계에 올랐다. 또 10년이 지난 뒤에 아들 양주목사 신응구(申應榘)가 자기 아버지의 나이가 90이 되었으므로 은전을 베풀어줄 것을 아뢰자 왕이 실직제수(實職除授)를 명하여 1612년(광해군 4)에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가 되었다. 인품이 근엄하고 겸손하였으며, 직산현감 자리를 떠난 뒤 읍민이 송덕비를 세우자, 이를 철거하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청음집(淸陰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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